함흥평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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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지리
지명
함경남도 성천강(城川江) 유역에 발달한 평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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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함경남도 성천강(城川江) 유역에 발달한 평야.
내용

북쪽으로는 함경산맥, 서쪽으로는 낭림산맥으로 둘러싸인 함경남도 제1의 평야로서 남북 길이 24㎞, 동서 길이 16㎞, 면적 438㎢이다. 평야의 북동쪽에서 호련천(瑚璉川)을 합류한 성천강은 평야의 북부를 남북으로 관통하여 동해로 흘러든다. 1921년의 치수 사업으로 서성천강(西城川江)을 폐쇄하여 동성천강(東城川江)에 합류시켜 동부 지방을 관개하였다.

여위천(汝渭川)·수완천(水浣川)·주이천(朱伊川) 등은 광포(廣浦)를 거쳐 동해로 흘러든다. 남쪽에는 금진천(金津川) 유역에 정평평야(定平平野)가 있고, 북쪽에는 오로리(五老里), 함경산맥의 지맥이 솟은 반룡산(盤龍山) 산록에 발달한 함흥시가 있다. 토양은 사질양토(砂質壤土)·양질사토의 충적층으로 표층의 두께가 30∼60㎝에 달하며 그 하층은 모래·자갈로 되어 있다.

성천강 연안이나 하류에 이르면 이러한 토양의 특성이 더욱 두드러져 표층의 두께가 1∼2m나 된다. 위도상 북부에 위치하고 있어 겨울이 한랭하고 길기 때문에 식물의 생장 기간이 짧으며, 여름에는 특히 8월 하순에 비가 많이 내린다. 경지는 논이 1만 2897(38.3%), 밭이 2만 808(61.7%)로 밭이 많으나 토지개량 사업에 따른 개답 사업으로 논이 확장되고 있다.

1929년 8개 면 1만 4000여 평야에 소하천을 이용한 개답 수리 사업과 계속적인 확장 사업으로 관개시설이 좋아져 1940년의 쌀 생산량은 10만 5000석에 달하였다. 이 밖에도 봄보리(1만 5000석)·콩(3만 5000석)·야채 등이 많이 재배된다. 한편 주변 경사지에서는 배·사과·포도 등의 과수 재배가 성한데, 과거에 주로 배를 재배하였던 것과는 달리 근래에는 사과 재배가 활발하다.

함흥평야는 고려·조선 시대 이후 많은 농산물의 생산과 더불어 관북의 정치적·경제적 중심지가 되었다. 한편 함흥은 해안연선(海岸沿線) 및 황초령(黃草嶺)·부전령(赴戰嶺)을 통하여 장진·갑산으로 이어지는 내륙 지방의 출입관문이다.

즉 함흥은 원산·회령 간의 1·2등 국도가 함경선과 나란히 달리고 장진·신흥에의 장진선·송흥선(松興線) 역시 국도와 병행하여, 서호진(西湖津)을 외항으로 하여 개발된 원산보다 앞선 관북의 제1 문화도시로서 제반 시설을 갖춘 도청 소재지로 발전하고 있다.

1920년대 후반에 일본이 부전강(赴戰江)·장진강(長津江) 유역변경식 수력발전 사업과 함께 개척 철도를 건설하여 함흥평야는 공업화, 도시화로 활기를 띠게 되었다. 1927년에 수력발전을 이용한 흥남질소비료공장이 건설되었으며, 본궁(本宮)까지 개척 철도로 운반된 지하자원과 성천강의 용수를 이용한 비료·화학·유지 등의 중화학 공업이 발달하였다.

이로 인하여 함흥·본궁·흥남이 관북 공업 지대의 핵심지로 발전하였으므로 노동자들이 많이 이주하여 새로운 흥남시가 출현하였다. 함흥평야는 관북의 중심지로 일찍이 공업화·도시화된 함흥·흥남시를 비롯하여 경지정리와 전기화된 농촌에서 교육 수준이 높은 주민들이 새로이 개발된 도시에서 평야와 내륙 산간 및 가까운 해안의 산물을 이용한 활기찬 생활을 하였다.

참고문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관북읍지(關北邑誌)』
『함경남도지』(함경남도지편찬위원회, 1968)
집필자
이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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