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상남도 합천군 봉산면에 있었던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고인돌·굴식돌방무덤 관련 생활유적.
내용
집자리는 평면형태가 모두 장방형으로 추정되며 크기는 3호 590×(잔)132×34㎝, 4호 230×(잔)63×12㎝, 6호 480×(잔)270×40㎝이다. 내부에는 벽도랑(壁溝), 기둥구멍(柱穴), 화덕자리(爐址)가 있다. 벽도랑은 산사면의 높은 쪽에 있으며, 화덕자리는 얕게 판 구덩식(竪穴式)으로 한쪽에 치우쳐 1기가 있다. 유물은 깊은바리모양토기(深鉢形土器), 얕은바리모양토기(淺鉢形土器), 긴목항아리(長頸壺), 항아리모양(壺形)의 붉은간토기(丹塗磨硏土器)가 출토되었으며, 문양은 골아가리무늬(口脣刻目文)와 구멍무늬(孔列文)가 새겨져있다. 석기류는 간돌검(磨製石劍)편, 슴베있는간돌화살촉(有莖式磨製石鏃), 삼각만입돌화살촉(三角灣入石鏃), 돌끌(石鑿), 돌낫(石鎌), 숫돌(砥石) 등과 4호에서 원판형의 흙으로 만든 그물추(土製 漁網錘) 51점이 출토되었다.
E지구의 고인돌군은 깬돌(割石)을 깔아서 개별 묘역(墓域)을 만들고 그 중앙부에 고임돌(支石) 없이 무덤방(墓室)을 둔 개석식(蓋石式)이 대부분이다. 부석시설(敷石施設)은 평면형태 장방형으로 크기는 7호 240×270㎝, 8호 600×1,000㎝로 다양하며, 대소형의 깬돌을 1∼3겹 정도로 깔고 가장자리는 대형의 깬돌을 정연하게 배치해 묘역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있다. 덮개돌은 무덤방 바로 위에 올려 뚜껑돌(蓋石)의 역할을 한 것과 뚜껑돌 위에 놓여 있는 것(6·8호)으로 구분된다. 무덤방은 지하식(地下式)과 지상식(地上式)으로 구분된다. 지상식의 무덤방은 뚜껑돌이 없는 것이 특징이며 바닥은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한 유사돌덧널형(類似石槨形)으로 1·2·3호가 있다. 지하식의 돌널형(石棺形)은 6·7호, 돌덧널형(石槨形)은 8호로 구분된다. 6호는 깐돌시설 없이 대형 깬돌 5매를 고임돌로 하고 그 아래 뚜껑돌은 납작판돌을 이용하여 3겹으로 눕혀쌓았다. 돌널의 크기는 66×32×33㎝로 벽석은 판돌을 세워 잇대고 바닥은 판돌 1매를 깔아 축조하였다. 8호는 265×100×85㎝로 부석시설 아래에 나무판(木板)으로 덮고 깬돌을 얹어 뚜껑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벽석은 깬돌을 이용하여 가로변쌓기를 하고 동단벽은 다소 엉성하게 세로변쌓기를 하였으며 바닥은 판돌을 1겹 깔았다. 특히 8호는 무덤방 동단벽에 무덤길(墓道)이 있는 앞트기식돌덧널형(橫口式石槨形)으로 삼국시대의 무덤축조 방식과 비교된다. 고인돌 내부 출토유물은 항아리모양의 붉은간토기, 깊은바리모양토기, 단추모양의 손잡이(把手)와 빗모양(櫛形) 반달돌칼(半月形石刀), 슴베있는간돌화살촉, 삼각만입돌화살촉, 자루달린간돌검(有柄式磨製石劍), 홈자루간돌검(二段柄式磨製石劍) 등이 출토되었다.
C지구와 D지구의 고분은 6세기 중엽경에서 7세기대에 이르는 것이다. 하나의 봉분과 그 주위로 돌아가는 둘레돌(護石)로 설정된 묘역의 중앙에 앞트기식돌방이나 굴식돌방을 주된 매장시설로 하고, 그 둘레에 2∼3기 정도의 작은 돌덧널(小形石槨)이나 독널돌덧널(甕棺石槨)을 배치시킨 고분이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다. C지구의 1호 굴식돌방은 장방형의 돌방에 짧은 우편수식(右便袖式)의 널길(羨道)을 설치한 유구이다. 이 고분에서 주목할만한 사실은 같은 유구 안에서 대가야식(大加耶式)의 목긴항아리(長頸壺) 및 굽다리접시(高杯)와 신라식 굽다리목긴항아리(臺附長頸壺)와 짧은굽다리접시(短脚高杯)가 함께 출토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측면은 이 지역의 토기양식이 대가야식에서 신라식으로 교체되었던 계기와 그 시점에 대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런 변화는 곧 신라의 가야진출과 연관된 것으로 해석하여 그 시점을 6세기 중후반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고고학사전』(배진성, 국립문화재연구소, 2002)
- 『합천저포고분A발굴조사보고(陜川苧浦古墳A發掘調査報告)』(영남대학교박물관, 1987)
- 『합천저포리B고분군(陜川苧浦里B古墳群)』(창원대학박물관, 1987)
- 『합천저포리C·D지구유적(陜川苧浦里C·D地區遺蹟)』(효성여자대학교박물관, 1987)
- 『합천저포리D지구유적(陜川苧浦里D地區遺蹟)』(경북대학교박물관, 1987)
- 『합천저포리E지구유적(陜川苧浦里E地區遺蹟)』(부산대학교박물관,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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