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출생. 경성제일고보에 입학했다가 중퇴하였다. 해방 후 조선문학가동맹에 참여하여 아동문학부 위원으로 활동하다가 한때 조선문학가동맹 출판부장을 맡기도 했다. 조선문학가동맹의 이념노선은 조선공산당의 문화운동 노선에 따라 규정되었다. 그러므로 현덕의 월북은 이념에 따라 실천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남생이」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경칩」(조선일보, 1938) · 「층(層)」(조선일보, 1938) · 「두꺼비가 먹은 돈」(조광, 1938) · 「골목」(조광, 1939) · 「잣을 까는 집」(여성, 1939) · 「녹성좌」(조선일보, 1939) · 「군맹」(매일신보, 1940) 등의 단편소설이 있다.
그는 단편소설과 함께 아동소설도 여러 편 발표하였다. 곧, 1938년 『소년』에 「하늘은 맑건만」 · 「권구시합(拳球試合)」, 1939년 같은 잡지에 「고구마」 · 「강아지」 · 「두포전」 · 「집을 나간 소년」 · 「잃었던 우정」을 발표하였다.
현덕은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맥락에서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이 올바른 삶의 지향처를 상실한 채 나날이 피폐해 가는 모습을 비관적으로 형상화한다. 원초적 삶의 본능 앞에서 의리니 도덕이니 하는 고상한 인격적 덕목은 무너져 내리고 만다고 서술한다. 또는 소극적으로나마 약육강식의 동물적 논리만이 판을 치는 현실에서 자기를 잃고 사는 동족들에게 일제강점기의 질곡에서 벗어나야 함을 촉구하는 담론으로 읽힌다.
그는 월북 후에도 한동안 창작 활동을 계속하였음이 최근 확인되고 있다. 한국동란이 끝난 다음에 발표한 「부싱쿠 동무」(1959) · 「싸우는 부두」(1961) 등의 단편소설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