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은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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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홍수주의 시 · 소 · 전 · 제문 등을 수록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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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홍수주의 시 · 소 · 전 · 제문 등을 수록한 시문집.
개설

6권 2책의 목판본으로 아들 홍우철(洪禹哲)이 편집하고, 종질 홍우부(洪禹傅)가 간행하였다. 원래 시문변려(詩文騈儷) 합 5권으로 되어 있었는데, 최석정(崔錫鼎)이 2책으로 만들고 서를 쓰려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권두에 1721년(경종 1)에 쓴 최석항(崔錫恒)의 서문이, 권말에 1722년(경종 2)에 쓴 홍우부의 발문이 있다.

권1∼3은 시 294수, 권4는 소(疏) 8편, 불윤비답(不允批答) 4편, 교서 3편, 전(箋) 4편, 제문 8편, 진향문(進香文)·치제문(致祭文)·상량문·축문 각 1편, 잡저 2편, 권5는 과체시(科體詩) 3수, 과체표(科體表) 8편, 권6은 부록으로 만사 20여 수, 치제문 1편, 제문 6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시는 「야성록(野城錄)」, 「지동록(芝洞錄)」, 「북적록(北謫錄)」, 「밀주록(密州錄)」, 「광성록(匡城錄)」, 「남정록(南征錄)」, 「연행록(燕行錄)」, 「금영록(錦營錄)」, 「수창록(酬唱錄)」, 「송행록(送行錄)」, 「상만록(相挽錄)」 등으로 나누어 수록하였다.

그 중 「야성록」은 1682년(숙종 8년)에서 1684년까지 영덕에서 벼슬살이할 때 지은 작품들을 모은 것이다. 「지동록」은 1685년 상소를 올리고 금양(衿陽)에서 대기하면서 지은 것으로 최석정과 수창한 것이 많다. 「북적록」은 1685년 경흥·덕원·철원 등지로 유배 다니며 지은 것이며, 「밀주록」은 1688년에서 1689년 사이 밀양에서,「광성록」은 1690년에서 1692년 사이에 덕원에서 지은 것이다. 「남정록」은 벼슬을 그만두고 형수댁으로 남행할 때 지은 것이고, 「연행록」은 1695년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정사 이세백(李世白), 서장관 최계옹(崔啓翁)과 함께 청나라로 가면서 주고받은 것이다. 「금영록」은 1696년에서 1697년에 호서백(湖西伯)으로 나갔을 때의 것이다. 「수창록」, 「송행록」, 「상만록」은 수창과 전별, 만사를 모아 놓은 것이다. 그의 시는 수창과 연구(聯句)가 대부분이며, 귀양 가서 지은 글에서는 무료하고 불편한 뜻을 표현한 내용이 많다. 그리고 만년의 작품은 교건(矯健)하다는 평을 받았다.

잡저 중 「가질우익우정처허여문(家姪禹翊禹鼎處許與文)」은 북경에 다녀오면서 『의례경전(儀禮經傳)』, 『성리대전(性理大全)』 등을 가져와 조카 홍우익(洪禹翊)과 홍우정(洪禹鼎)의 성격에 맞게 나누어주고 학업에 전념할 것을 권한 글이다. 규장각도서에 포함되어 있다.

참고문헌

『호은집(壺隱集)』
『한국문집총간』속 41∼50(민족문화추진회편, 민족문화추진회, 2007)
『국역 근역서화징』(오세창, 시공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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