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관후

  • 역사
  • 인물
  • 개항기
  • 현대
일제강점기 때,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의 독립만세시위를 참여한 독립운동가.
이칭
  • 이칭홍재범(洪在範)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71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90년(고종 27)
  • 출생지경기도 수원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진봉 (충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일제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 홍관후 전후면 미디어 정보

일제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 홍관후 전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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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의 독립만세시위를 참여한 독립운동가.

개설

일명 홍재범(洪在範). 경기도 수원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1919년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홍면 등이 전개한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지금의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사강 장날인 28일 홍면 등과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는데, 이때 일본인 순사부장 노구치[野口廣三]가 출동하여 제지하려 하였으나 군중이 이에 굴하지 않고 계속 독립만세를 외치자, 일본경찰은 주동자 홍면 외 2명을 붙잡아 꿇어앉혀 놓았다.

그러나 홍면이 갑자기 일어서서 독립만세를 외치자 노구치가 권총을 발사하여 홍면의 어깨를 관통시켰다. 홍면이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지며 자기에게 발포한 일경을 죽이라고 외치는 광경을 본 시위군중이 분노하여 일시에 달려들자, 노구치는 자전거를 타고 사강리주재소 방향으로 도주하였다.

이때 격분하여 홍면의 동생 홍준옥(洪㻐玉), 장인 김명제(金命濟)와 왕광연(王光演)·문상익(文相翊)·김교창(金敎昌) 등과 함께 추격, 일본경찰을 포위하여 투석으로 격살시키는 등 격렬하게 운동을 전개하다가 붙잡혀 7년 간의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독립운동사자료집』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 - 『독립운동사』2(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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