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연재(然齋). 충청남도 서천 출생. 한문 수학 후 서울중동학교 3년을 졸업하였다. 그 뒤 경성 예명학교(禮明學校)와 양현여학교(養賢女學校) 교원을 역임하고, 1932년부터 부여군청으로 옮겨 고적보존사무를 담당하였다. 1945년부터 1961년까지 국립박물관 부여분관장과 경주분관장을 지내고 다시 국립부여박물관으로 돌아와 정년을 맞이하였다.
경주에서는 첨성대와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을 실측하였으며, 1967년부터 한국일보사 주관의 신라 5악조사단에 참가하여 토함산과 계룡산지구에서 새로운 유적과 유물을 발굴 · 조사하였다. 경주 동해구에서 문무대왕 해중릉 조사에 참여하였고, 경주 단석산 신선사(神仙寺)의 마애불상조사에서는 그곳을 김유신(金庾信)의 기도처로 추정하였다. 또한, 평생 백제 문물의 희귀함을 개탄하면서 신라와 일본의 불교문물의 연원이 백제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한국의 석탑과 석불이 백제에서 발생한 사실을 강조하여, 전북특별자치도 익산 미륵사의 다층석탑과 충청남도 부여 정림사오층석탑의 조사, 그리고 서산지역의 초기 마애삼존석상 발견에 공헌하였다. 나아가 익산을 백제 무왕이 천도한 곳으로 피력하였는데, 이와 같은 주장은 익산 발굴로 연결되었고 백제 유적과 유물조사에서 큰 성과를 얻게 하였다.
학계활동으로는 고고미술동인회의 창립에 참여하였으며, 나아가 한국미술사학회 창립과 그 발전을 위하여 공헌하였다. 정년퇴임 후에는 부여에서 후배를 지도하며, 문화유산 수리에 힘을 기울였다.
저서로는 추모시조집 『서심초(敍心草)』와 『연재고고논집(然齋考古論集)』, 『백제의 전설』, 『백제문화와 부여』, 『부여의 백제유적』, 『백제사료』 등이 있다.
대한민국문화훈장 국민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