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3년(정조 7) 금어(金魚)인 비현(丕賢)과 편수(片手)인 쾌윤(快允)·도옥(道玉)이 함께 조성하였다. 비단 바탕에 채색된 작품으로. 그림 전체 크기는 세로 827㎝, 가로 592.4㎝ (화면 크기는 세로 758.1㎝, 가로 573.4㎝)이다. 200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화승 비현 등은 당시 전라남도 선암사와 흥국사를 중심으로 활약하던 일류 화공이다. 화기(畵記)에 ‘영산회탱(靈山會幀)’의 명칭 및 ‘이 공덕으로 모든 중생이 불도(佛道)를 이루기를 원한다’는 발원문이 있다.
석가불 입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여의(如意)를 든 문수보살과 연꽃 줄기를 든 보현보살이 시립한 석가삼존불 입상 형식이다. 삼존(三尊)의 크기가 같지만 석가불은 신체에 비해 얼굴이 크고 협시보살은 얼굴이 작아 늘씬하다.
석가불은 청색의 머리에는 육계(肉髻)를 가릴 정도로 큰 구슬의 정상계주(頂上髻珠)가 강조되었으며 장방형의 얼굴에 처진 눈썹과 올라간 눈, 작은 입의 근엄한 표정이다. 좁은 어깨의 세장한 신체, 가슴에 금채(金彩)로 만(卍)자를 나타냈으며 오른팔은 내렸고 왼팔은 가슴 앞으로 들었다. 오른쪽 어깨가 드러난 우견편단(右肩偏袒)의 법의(法衣)에는 금채의 용(龍) 문양이 등장하였고 군의(裙衣)에 영락을 장식하였다. 매우 세장한 신체의 보살상도 보관과 목걸이, 천의(天衣)의 문양과 영락 장식이 화려하다.
거신광배의 양녹색은 적색의 옷을 걸친 삼존을 돋보이게 한다. 특히 이 괘불도에는 문양과 영락의 화려함이 그 절정에 달하고 있다. 석가불의 법의에는 용, 당초, 파도문양이 시문되었고 보살의 천의에는 청화백자의 문양처럼 흰색 바탕에 청색 안료로 대나무, 죽순, 소나무, 기암괴석 등을 묘사했으며 화문은 큼직하다. 이러한 파격적인 옷 문양은 비현의 제자인 평삼이 제작한 경상남도 「옥천사괘불도」(1808년)에서도 발견된다. 「옥천사괘불도」는 「만연사괘불도」의 밑그림을 사용하여 변형시킨 것으로, 석가삼존불을 강조한 화면에 가섭존자와 아난존자를 첨가시켰다. 적색과 녹색 위주로, 청색, 흰색 등 전반적으로 호분이 안료에 첨가되어 중간 색조를 만들면서 짙고 탁한 느낌의 특이한 색조를 보인다.
18세기 전반기 의겸(義謙)의 화풍이 힘 있는 필선(筆線)의 안정된 형태 묘사와 맑고 선명한 채색을 사용하였다면, 18세기 후반기의 이 괘불도는 앞 시대의 간략한 석가삼존불 형식을 따르면서 전통적인 면을 강조했다. 화려한 문양, 짙은 채색, 유려한 필선 등 독보적인 경지를 개척한 비현 일파의 난숙한 경지에서 전라도 지역의 화풍 특성이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