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황산대첩비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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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황산대첩비 정측면
남원 황산대첩비 정측면
건축
유적
문화재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에 있는 조선전기 황산대첩 승전 관련 비터. 비터.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남원 황산대첩비지(南原 荒山大捷碑址)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사적(1963년 01월 21일 지정)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 가산화수길 84 (화수리)
목차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에 있는 조선전기 황산대첩 승전 관련 비터. 비터.
내용

고려 말에 이성계(李成桂)가 황산에서 왜구를 섬멸한 일을 기록한 비가 있던 곳이다.

황산은 운봉읍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약 8㎞ 떨어진 해발 695m의 바위산이다. 1380년(우왕 6)에 삼도순찰사 이성계는 산 아래 협곡에서 배극렴(裵克廉, 1325∼1392) · 이두란(李豆蘭) 등 휘하의 여덟 원수를 거느리고 함양에서 공격해오는 왜구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 적장 아지발도(阿只拔都)를 사살하는 등 큰 승리를 거두었다. 황산대첩은 이후 크게 알려져 그 내용이「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에도 수록되었다.

1577년(선조 10)에는 당시의 승전 사실을 길이 전하기 위하여 호조판서 김귀영(金貴榮, 1520∼1593)이 글을 짓고 송인(宋寅, 1517∼1584)의 글씨로 새긴 황산대첩비가 건립되었다. 건립 당시에는 비각(碑閣) · 별장청(別將廳) 등의 다른 건물도 지어 비를 지키도록 하였다. 지금도 비터에는 그 흔적이 남아 있다.

1945년 1월에 남원의 경찰은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에 따라 소방대를 동원하여 비를 폭파하고 비문의 글자를 긁어 버렸다.1963년에 사적으로 지정된 뒤 깨진 거북돌을 다시 맞추고 오석(烏石)으로 비신을 다시 세웠고, 1973년에는 비전(碑殿) · 홍살문 · 삼문 · 담장 등과 함께 여러 부속건물 등을 새로이 정비하고 단장하였다. 새로 세워진 대첩비는 높이 4.25m로, 용을 새긴 이수(螭首)와 거북 모양의 귀부(龜趺)를 갖추고 있다.

참고문헌

『지리산권의 금석문』(김아네스 편, 국립순천대학교 지리산권문화연구원,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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