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집의, 사간, 우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호군으로 등용되어 아버지 정욱과 함께 사위인 왕자 순화군 이보(順和君 李보)를 따라 강원도를 거쳐 회령으로 갔다가 모반자인 국경인(鞠景仁)에게 붙잡혀 왜군에게 인계되었다.
그 뒤 안변의 토굴에 감금되어 갖은 고초를 받다가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에게 끌려나가 선조에게 항복권유문을 쓰라는 강요를 받고 항복권유문을 썼다. 그러나 몰래 별도로 아버지 황정욱이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적어서 보냈다. 1593년 부산에서 두 왕자와 함께 송환되었다.
그 뒤 항복권유문을 썼다고 반대파의 탄핵을 받아 이산(理山)에 유배되었다가 신천으로 이배(移配)되었다. 1612년, 전날에 이이첨(李爾瞻)을 시로써 풍자한 일 때문에 미움을 받아, 순화군의 아들 진릉군 이태경(晉陵君 李泰慶)을 왕으로 추대하려 한다는 무고를 받고 투옥되어 고문을 받다 죽었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이후 복관, 좌찬성에 추증되고, 장천군(長川君)에 추봉(追封)되었다. 저서로 『독석집』이 있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국조방목(國朝榜目)』
- 『학곡집(鶴谷集)』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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