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변승기의 아들 변진갑(邊鎭甲) 등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이종택(李鍾宅)과 김기상(金基尙)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김석환(金錫煥)과 아들 변진욱(邊鎭旭)의 발문이 실려 있다.
13권 2책. 석인본. 국립중앙도서관과 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5에 시 765수, 권6에 소(疏) 3편, 권7에 서(書) 55편, 권8에 기(記) 19편, 서(序) 8편, 발(跋) 2편, 권9에 잡저 28편, 권10에 문(文) 18편, 권11에 논설 16편, 권12에 제문 7편, 상량문 2편, 묘갈명 2편, 비명 1편, 묘표 3편, 사적 1편, 찬(讚) 5편, 행장 1편, 서후(書後) 2편, 서(序) 1편, 서(書) 2편, 권13에 부록으로 만사(輓詞) 40수, 제문 8편, 묘갈명·가장(家狀)·행장·발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증시(贈詩)와 만사가 많으며, 기행시나 일상생활을 노래한 것도 다수 있다. 「갑오십이월일일문왕사입성(甲午十二月一日聞王師入城)」은 갑오농민전쟁 당시 농민군의 패퇴와 관군의 승리를 찬양한 내용이다. 저자의 이같은 태도는 당시 동학과 새로운 서양 종교의 유입에 대해 한탄하고 전통 유교로 복귀하기를 바라는 유림에 공통된 것이었다. 「탄세(歎世)」에서도 이단을 배척하고 유학을 숭상하자고 하였다.
기행시 「서유록(西遊錄)」은 일제의 주선에 의해 유림단(儒林團)의 일원으로 서울 이북 지방을 시찰하던 과정에서 느낀 감회를 읊은 것이다. 개성과 평양·압록강 철교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모두 9수의 시로 표현하였다. 그밖에 「금강록(金剛錄)」과 「경주고적(慶州古蹟)」 등이 있다.
서(序)의 「조선청금록서(朝鮮靑衿錄序)」는 조선시대의 유학자를 비롯해 일제하에서 활동하던 유림의 명단을 작성하면서 이에 붙인 글이다. 저자의 유교적 가치 질서에 입각한 세계관을 잘 드러내고 있다.
잡저의 「균세전말(均稅顚末)」은 화폐정리 사업 이후 종래 백동화 유통 지역과 엽전 유통 지역 사이에서 발생한 불균등한 징세액의 문제점과 이를 시정하기 위한 활동의 전말을 적고 있다. 『대한매일신보』에 게재된 「전라도민론(全羅道民論)」도 저자의 이 같은 활동을 보여 주는 자료이다. 저자가 통감부·탁지부나 일본인 고문관에게 제출한 청원서도 여러 편 실려 있다.
논설은 사서(四書) 문제를 비롯해 역사·지지·경제·법률 등 다양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혁구론(革舊論)」에서는 사회의 변화에 따른 각 계층의 인식과 행동의 변화를 요구하였다. 즉, 유생은 망국으로 이끈 고루한 사고를 버리고 유교의 교화로 새로운 국가사상을 실천하고, 관리된 자는 수탈하던 구습을 버리고 새로운 문명의 교화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양반도 종래의 특권적 지위에 안주하지 말고 개화하여 새 지식을 개발하고, 상민도 능력을 개발함으로써 천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경고반족설(警告班族說)」이나 「경제여교육완급론(經濟與敎育緩急論)」에서도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종래의 유교적 사유 체계에 인식 기반을 두면서 새로운 근대 문물과 일제의 식민 통치에 적응해 가는 당시 지방 유학자의 행동 양태를 살피는 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