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완군(興完君, 1815∼1849)은 고종(高宗)의 생부 흥선대원군의 형으로 본명은 이정응(李晸應)이며 영의정까지 추증된 인물이다. 이 유물들은 일반적으로 흥완군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의복 중 일부는 그 형태로 미루어 양자 완순군(完順君, 1855∼1923)의 것으로 추정된다. 종중에서 대를 이어 유물을 보관하다가 1982년 숙명여자대학교박물관에 기증하였으며, 1983년 4월 11일 일괄 62점이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지정된 유물은 복식학계의 연구 결과를 반영하여 『문화재대관』 개편시 일부 수정된 명칭으로 소개되었다. 유물의 종류는 조복(朝服) 일습(一襲) 중 의(衣) 2점, 청초중단(靑綃中單) 3점, 제복(祭服) 일습 중 의 1점, 백초중단(白綃中單) 1점, 관복(官服) 14점, 청철릭[靑天翼] 1점, 전복(戰服) 2점, 동다리 1점, 쾌자(快子) 1점, 허리띠 23점[광대(廣帶) 2점, 대대(大帶) 1점, 세조대(細條帶) 11점, 품대(品帶) 9점], 후수(後綏) 1점, 흉배 6점(금사쌍학 1쌍, 쌍학 1쌍, 단학 1쌍), 상아홀(象牙笏) 2점, 등거리장식 1점, 차선(遮扇) 1점, 청사등롱(靑紗燈籠) 2점 등 총 62점이다.
조복 일습 중에는 적초의가 2점, 청초중단이 3점 있다. 이 중 홍색 세주(細紬)로 만든 적초의 1점은 청초중단의 소매를 생략하여 만든 후 적초의에 끼워 어깨를 겉감 적초의와 함께 붙여 한 벌로써 두 벌의 역할을 겸용하여 간편하게 만들었다. 적초의 가슴 부위에 폐슬을 직접 부착하였고, 중단의 앞뒤 가슴부분에는 홍색의 주(紬)로 만든 상(裳)이 붙어 있는 등 조선 말기 의제개편 이후 관복의 간편화된 모습이 나타나는 전형적인 예이다. 나머지 적초의 1점은 홍색의 은조사로 만들었으며 가슴에는 폐슬이 붙어 있다. 나머지 청초중단 2점은 은조사와 생초(生綃)로 만들었으며, 길이는 127∼131.5㎝, 화장은 85∼92㎝ 정도이다. 이 중 1점은 앞뒤에 상이 붙어 있다.
제복은 의(衣)가 2점, 중단(白綃中單)이 1점이다. 1점은 흑색의 순인 바탕에 깃, 섶, 소매, 도련에는 소색 공단으로 된 가는 백선과 8.2㎝ 너비의 선단을 둘렀다. 1점은 길과 소매가 자색 3족항라(三足亢羅)이며, 홍색 순인 폐슬과 백색 3족항라의 단령 깃, 방심곡령이 부착되어 있다. 2점 모두 반당코 깃에 넓은 소매이며 가슴에는 홍색 폐슬, 깃에는 동정과 방심곡령이 달려 있다. 크기는 뒷길이 97∼102㎝, 화장 84∼91㎝ 범위에 있다. 백초중단은 1점이 있으며 길이 127㎝, 화장 90㎝로 소색 3족항라로 만들고 직령은 넓은 소매이며 앞뒷길에 붉은 색 상(裳)이 부착되어 있는데 의제개혁으로 인한 복식간소화의 영향이다.
후수(後綬)는 홍색공단에 연금사와 꼰사로 위부터 청, 담황, 청, 백색 순으로 4쌍의 학을 수놓고 구름은 홍, 녹, 자, 청색으로 수놓았다. 윗단에는 2개의 금환을 달았고 아래에는 청사망을 드리웠다.
단령은 모두 14점인데 12점은 관복으로, 2점은 단령으로 지정되어 있다. 홑모시단령 1점을 제외하고는 모두 겹단령이다. 소재는 모시, 은조사, 초, 운보문사 등이 쓰였다. 소매는 광수와 착수가 섞여있으며, 안의 직령 깃은 종이로 심을 하고 소색의 은조사나 초, 항라 등으로 만들었다. 관복 중 대부분은 배래가 좁은 소매〔窄袖〕로 되어 있는데, 소매가 배래가 넓은 소매〔廣袖〕에서 착수(窄袖)로 변한 것은 1894년 의제개혁 이후부터이다. 그런데 이때는 흥완군이 죽고 완순군이 등용된 시기이므로 착수의 관복은 완순군의 것으로 보아야 타당하다. 상복인 단령의 무도 뒤로 접혀 고정되어 있는 보통의 무와는 달리, 양옆이 트여 있거나 말엽의 두루마기 무와 같이 앞뒤가 같은 것이 있다. ‘자청색관복’으로 지정되어 있는 단령은 길과 소매를 서로 다른 색 옷감으로 만든 특이한 경우이다. 길은 아청색, 소매와 무는 자색, 안감은 담청색의 운보문사로 만들었다. 천담모시단령은 겉감은 옥색모시, 안감은 옥색주로 만들었다. 착수이고 양옆 솔기가 트여져 있으며 검은색의 대가 끼워져 있다.
철릭은 1점으로 청색 운보문사로 만든 홑옷이다. 직령 깃에 소매는 두리소매 형태로 오른쪽은 매듭단추가 달려 있어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으며 길이 139.5㎝, 화장 84㎝이다.
군복(軍服)으로 동다리 1점, 전복 3점이 있다. 동다리는 겉길과 무는 주황색 쌍용문 갑사, 소매는 진동부터 부리까지 홍색 쌍용문갑사이며 안감은 청색 쌍용문 갑사로 만들었다. 전복은 녹색 홑전복, 청녹색 겹전복, 흑색의 겹전복이 있는데, 옷감은 은조사, 5족항라, 쌍용문갑사를 사용하였다. 옷의 길이는 121∼127㎝ 범위이며 뒤트임과 옆트임이 있다.
허리띠는 요대(腰帶) 2점, 조대 11점, 품대 7점, 대대 1점, 전대 1점이 있다. 요대(腰帶)는 흔히 광대(廣帶)로 불리는 것으로 군복용 허리띠이다. 겉감은 모두 흑색 둥근 쌍용과 보문이 있는 장단(漳緞)이며, 안감은 청색무명을 대었으며 겉안 사이에 두꺼운 심지를 넣어 뻣뻣하고 두껍다. 품대는 모두 7개로 대모대(玳瑁帶) 1점, 서대 4점, 저포품대(苧布品帶) 2점이다. 조대는 모두 11점으로 8개는 호패술이며 세조대 2점, 광다회 1점이 있다. 대대(大帶)는 소색 순인을 겹으로 하고 흑색 순인으로 선을 둘렀으며 허리에 붉은색 매듭단추 3개가 달려 있다. 전대(戰帶)는 청색의 운보문사로 만들었고, 총길이 339㎝로 완성된 너비는 약 16.5㎝이이며, 사선으로 재단되어 있다.
흉배는 모두 6점이 있다. 금사쌍학흉배 2점, 쌍학문흉배 2점, 단학흉배 2점이 있다. 그 외 등거리장식 1점, 차선(遮扇) 1점, 청사등롱(靑紗燈籠) 2점이 있다. 홀은 2점으로 상아로 만들었으며 손잡이는 남색 융으로 쌌다.
흥완군의복(興完君衣服)은 흥완군과 아들 완순군의 옷이 함께 있는 것으로 밝혀진 유물이다. 1894년 고종의 복식간소화를 천명한 의제개혁이 있었는데, 유물은 의제개혁 전후 시기의 옷이 모두 전해지고 있어 개화기의 관복 변천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적초의 안에 소매가 생략된 중단을 끼워 바느질하거나 중단에 상(裳)을 붙이는 등 한 벌로써 두 벌의 역할을 겸용하여 간편하게 만들어 복식간소화의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