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찬 경위와 시기는 미상이다. 그러나 제2책 「함경남병영영지(咸鏡南兵營營誌)」 창름조에 ‘계미 신식혁파(癸未新式革罷)’가 기재되어 있어 1883년(고종 20) 이후 고종대에 다른 지역의 영지 편찬 시기로 미루어 보면, 1895년(고종 32) 경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된다.
28.8×17.9㎝. 2책이며 필사본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본(奎 12191)으로, 제1책의 표제는 『영지부신사례(營誌附新事例)』, 내제는 『함산지통기(咸山誌通紀)』, 제2책의 표제는 『영지부사례(營誌附事例)』, 내제는 『함경남병영영지』이다.
『관북영지』은 제1책 『함산지통기』와 제2책 『함경남병영영지』로 구성된 함경도 영지(營誌)로, 제1책 『함산지통기』는 4권과 「함경감영신정사례(咸鏡監營新定事例)」로 이루어졌다.
권1은 부계(府界)·연혁·군명(郡名)·관원·성곽·제서(諸署)·관우(館宇)·창고로, 권2는 누정·분야(分野)·산천·관방(關防)·형승(形勝)·사명(社名)·풍속으로, 권3은 학교·능전(陵殿)·사묘(祠廟)·사전(祀典)·봉수·역원·파발·불우(佛宇)·해진(海津)으로, 권4는 교량·제언(堤堰)·피거(陂渠)·시장·도로·고적·명환(名宦)으로 구성되었다.
『함산지통기』는 주기(朱杞)가 편찬한 『증보함산지(增補咸山誌)』를 저본으로 내용을 보완하였다. 이 가운데 분야·사전·피거·시장 조는 ‘금보(今補)’된 것이다. 읍치에 중요한 호구·전결·전세 등의 경제 조항이 누락되었지만 대신 관우·누정·형승 등의 항목에 숙종의 어제시서(御製詩序)를 비롯한 다수의 시(詩)가 수록되었다.
「함경감영신정사례」는 조적계(糶糴啓), 영속질(營屬秩), 응봉질(應捧秩), 진상질(進上秩), 경상납질(京上納秩), 용하질(用下秩), 영황(營貺)‚ 막황(幕貺)‚ 중영(中營)‚ 부항용하질(不恒用下秩)로 구성되었다.
제2책 『함경남병영영지』는 성지(城池)·건치연혁·관직·공해(公廨)·창름(倉廩)·파발(擺撥)·봉수·영애(嶺阨)·군병·역원·파수(把守)·군향(軍餉)·절도사선생안·우후선생안(虞候先生案)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어서 「함경남병영사례(咸鏡南兵營事例)」가 기록되었다.
이 책 이외에도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본 『관북읍지(關北邑誌)』(규 10995; 규 667; 규 12170; 규 12179)와 『함흥지(咸興誌)』(규 1314) 등이 다수 현전한다.
함경도는 지리지 편찬의 역사가 짧은 지역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제외하고는 함경도의 읍지 중 그 나름의 편찬사를 가지며 내용이 착실한 것은 『함산지』이다. 이 책은 『咸山誌』의 내용을 계승하면서 현재 상황에 맞게 ‘금보(今補)’로 보충하였고, 계미 신식혁파(癸未新式革罷)에 따른 신정사례(新定事例)를 포함하였다. 그러므로 당시 함경도의 사회상 및 군영의 운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사료로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