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천자문 ()

언어·문자
문헌
중국 양나라 주흥사의 『천자문』에 우리나라 광주 지역에서 한글로 석과 음을 달아 1575년에 간행한 교재. 한자교본.
정의
중국 양나라 주흥사의 『천자문』에 우리나라 광주 지역에서 한글로 석과 음을 달아 1575년에 간행한 교재. 한자교본.
개설

한자 학습을 위해 간행된『천자문』은 사언고시(四言古詩) 250구(句)를 합해서 1,000자가 각각 다른 글자로 되어 있다. 오늘날 전하는『천자문』들은 모두 16세기 중엽 이후의 것이다. 광주 지역에서 한글로 석과 음을 달아 간행한 것이『광주천자문(光州千字文)』이다. 이 책에는 광주 지역의 언어 사실이 반영되어 있다.

서지적 사항

목판본. 불분권 1책.

편찬/발간 경위

『천자문』은 6세기 중국 양나라의 주흥사가 지은 책이다. 이 책이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온 때가 언제인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백제 때 왕인(王仁)이『논어(論語)』10권과 함께 이 책 1권을 일본에 전했다는 기록이 있다. 아마도 삼국시대에 들어와 통일신라시대에 널리 보급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시대 훈민정음이 창제된 뒤에는 이 책에 ‘天 하ᄂᆞᆯ 텬’과 같이 새김과 독음을 달아 읽게 되었고 이 석음(釋音)을 단 책이 간행되어 한자 입문서로 널리 이용되었다. 『천자문』은 한자의 자형, 독음 및 의미를 알게 할 뿐만 아니라 교양으로서 갖추어야 할 중국의 고사를 배우고 글씨를 익히는 교본의 역할도 담당하였다. 그래서 안평대군(安平大君), 박팽년(朴彭年), 이황(李滉), 김인후(金麟厚) 등 당대의 명필이자 저명한 도학자들이 자신의 서체로『천자문』을 써서 남겼다.

이 중 한글로 석과 음을 단『천자문』중 가장 오래된 것은 일본 동경대학 소창문고에 소장되어 있는『광주천자문』이다.『광주천자문』은 현존 최고(最高)의 판본으로 알려져 있는데, 권말에 ‘만력삼년월일광주간상(萬曆三年月日光州刊上)’이라는 간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1575년(선조 8)에 전라도 광주에서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보다 조금 앞선 것으로 추정되는 간본으로 일본 대동급문고본(大東急文庫本)이 있다. 대동급문고본은 반영된 언어 사실을 보면 역시 광주 인근의 지방판으로 보인다. 이 대동급문고본은『광주천자문』보다 표기법에서 더 이른 표기가 반영되어 있어서 그러한 추정이 가능하다.

『광주천자문』은『석봉천자문』과 계통을 달리한다. 수많은『천자문』판본 중에서 『광주천자문』에서만 ‘績 ᄭᅮ리 젹’, ‘律 법ᄧᆞᆯ 률’, ‘儀 다ᄉᆞᆷ 의’, ‘處 바라 쳐’ 등과 같이 독특한 새김이 나타나 있는 경우가 많아 주목할 만하다.

내용

『천자문』은 ‘천지현황(天地玄黃)’에서 시작하여 ‘언재호야(焉哉乎也)’로 끝난다. 당나라 이후 급격히 보급되어 많은 서가(書家)에 의하여 씌어졌다. 그 중에서도 습자 교본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왕희지의 7대손 지영(智永)이 진서(眞書: 楷書)와 초서(草書)의 두 체로 쓴『진초천자문(眞草千字文)』본으로 1109년에 새긴 석각(石刻)이 전하고 있다.

송대(宋代) 이후 이용 범위가 점점 확대되어『천자문』의 순서를 이용하여 문서 등의 번호를 붙이는 습관도 생겼다. 또한『속천자문』이 나오는가 하면 전연 딴 글자를 뽑아『서고천자문(敍古千字文)』이라 이름 붙인 종류도 많이 나왔다.

『천자문』이 한국에 전해진 연대는 확실치 않다. 백제 때 왕인(王仁)이『논어(論語)』10권과 함께 이 책 1권을 일본에 전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보다 훨씬 전에 들어온 것으로 추측된다. 그 후 한문의 입문서로서 초보자에게는 필수의 교과서로 중용(重用)되었으며 중앙에서 지방에서 두루 간행되었다. 그 중에 연대가 분명한『천자문』중에 가장 오래된 언어 사실을 담고 있는 것이『광주천자문』이다.

『광주천자문』과 비견되는 다른 계열로『석봉천자문』이 있다. 국내에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천자문』인『석봉천자문』은 1583년(선조 16)에 간행되었는데,『광주천자문』과 여러 가지 차이를 보인다.『광주천자문』에서는 ‘여모정결(女慕貞潔)’로 된 구절의 ‘결(潔)’자가『석봉천자문』에서는 ‘열(烈)’로 나타난다.『광주천자문』에서는 한자음에 성조 구분 표시를 하지 않았는데, 『석봉천자문』에서는 거성과 상성에 대하여 각각 한자의 왼쪽과 오른쪽에 권점(圈點)을 쳐서 구분하였다. 그리고『광주천자문』에서는 ‘ㅿ’이 보이고 ‘ㆁ’이 불규칙하게 나타나는데 비해『석봉천자문』에는 ‘ㅿ’이 전혀 보이지 않는 반면 종성 ‘ㆁ’은 정확하게 사용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4언 고시 250구로 된『천자문』은 기초 실용 한자의 한계를 넘어 고대 중국의 고사, 국명, 인명, 지명, 윤리, 물리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갖가지 이본이 존재하지만, 그 가치를 잃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천자문』은 단순한 기초문자 교육에만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4자 1구를 하나하나 학습하고 체계적으로 익힘으로써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모든 언행을 교육하는 데도 목적이 있었다.

『광주천자문』은 한자교육의 기본서, 한문 글씨의 교본으로서 가치가 있지만 수록된 한자음과 새김은 국어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또한 중세국어 시기의 광주 지역 언어 현실을 반영하고 있어서 국어사적으로 귀중한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새국어생활』(국립국어원, 2009)
『규장각소장어문학자료 어학편 해설』(서울대학교규장각, 2007)
「『천자문』새김 어휘 연구」(최지훈,『한국어 의미학』9, 2001)
「천자문의 계통」(안병희,『정신문화연구』12, 1982)
「천자문 연구」(이기문,『한국문화』2, 1981)
「천자문 해제」(이기문,『동양학총서』3, 1973)
「천자문」(이병기, 디지털한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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