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요어(口授要語)』는 모려(茅廬) 최남두(崔南斗, 1720∼1777)가 『사서(四書)』등에서 학문과 관련된 중요한 구절을 발췌·편집하여 엮은 글로, 규장각본 표지를 보면, 작은 글씨로 「구수요어(口授要語)」라고 적혀 있고 큰 글씨로 『모려집(茅廬集) 리(利)』라고 되어 있다. 이 표지 제목으로 보면, 규장각본 「구수요어」는 1892년(고종 29) 후손 최병오(崔秉五)와 최덕환(崔德煥)이 『모려선생문집(茅廬先生文集)』을 간행할 때 그 속에 포함되어 간행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하지만 1831년(순조 31) 정재규(鄭載圭)가 지은 서문에는 최남두가 유일하게 손수 편집한 책으로 『구수요어』를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아마도 문집으로 통합되기 전에 『구수요어』가 별도로 제작된 것으로 짐작된다.
책머리에는 1831년(순조 31) 정재규가 지은 서문이 처음 나오고 그 뒤에는 정재규가 그 다음해에 지은 재서(再書)가 있다. 서문에 따르면 최남두는 학문에 힘써 『논어』와 『맹자』는 천 번, 『중용』과 『대학』은 만 번이나 독서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책을 지어 후세에 남긴 것이 없으며 손수 편집한 것은 오직 『구수요어』 한 책이었다. 『구수요어』는 『사서』에서 학문에 도움이 되는 구절을 편집해 만들었으며, 최남두 개인의 견해는 없다. 단지 편수(編首)마다 서차(序次)의 뜻을 간략하게 기술하고 있을 뿐이다.
『구수요어』의 구성은 권1이 「학(學)」, 「지행(知行)」, 「도(道)」, 「군자(君子)」라는 주제로, 권2는 「인(仁)」, 「예(禮)」, 「효(孝)」, 「붕우(朋友)」, 「공자(孔子)」라는 주제로 관련 경문을 모아놓았다. 권1은 명선(明善)과 성신(誠身)은 오직 학문에 있다는 관점에서「학」이 맨 처음에 배치되었고, 권2는 인(仁)을 구하는 것이 『논어』의 대강령이라는 입장에서 「인」을 맨 앞에 두었다. 그리고 『논어』「향당(鄕黨)」에서 16절을 뽑아 만든 「공자」편의 경우 다른 곳과 달리 각 절마다 공자의 어떤 모습을 형용하고 있는지 간단한 설명을 붙이고 있다. 『구수요어』 뒤에 첨부된 『논역수차(論易隨箚)』는 『구수요어』처럼 경문(經文)에서 뽑은 것이 아니라 정자(程子)나 주자(朱子)와 같은 선현(先賢)이 『논어』와 『주역』에 대해 말한 것을 편집한 글이다. 책 맨 뒤에는 1892년(고종 29)에 만든 허유(許愈)의 발문이 실려 있는데, 허유는 『구수요어』가 저술을 좋아하지 않았던 남명(南冥)조식(曺植, 1501∼1572)이 만든 『학기(學記)』의 유의(遺意)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 책은 조선 후기 유학자들이 『사서』에서 학문적으로 중요시한 내용이 무엇인지를 엿볼 수 있게 해 주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