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전영지 ()

인문지리
문헌
수원 · 춘천 · 강화부의 연혁 · 인문지리 · 행정 등을 수록하여 의정부에서 1895년에 3책으로 편찬한 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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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수원 · 춘천 · 강화부의 연혁 · 인문지리 · 행정 등을 수록하여 의정부에서 1895년에 3책으로 편찬한 읍지.
개설

『기전영지(畿甸營誌)』는 1895년(고종 32)에 의정부(議政府)에서 편찬한 읍지로, 제1책 『수원부읍지(水原府邑誌)』, 제2책 『춘천지(春川誌)』, 제3책 『강화부읍지(江華府邑誌)』로 구성되었다. 이 책은 당시 전국적인 읍지 편찬의 일환으로 제작되었으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본(奎 12187)이 있고, 『한국지리지총서 읍지 10』와 『규장각자료총서 지리지편 경기도읍지』1로 영인되었다.

편찬/발간 경위

1413년(태종 13) 팔도제와 군현제 실시로 정착된 조선의 지방제도가 갑오개혁에 의해 1895년(고종 32) 23부와 군제로 개정되고, 1896년에는 13도제로 바뀌었다. 1894년에서 1895년까지 전국에 걸친 읍지 편찬은 갑오개혁에 의한 지방제도의 정리, 동학농민운동과 청일전쟁, 지방재정의 문란 등으로 인한 지방실정의 파악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지적 사항

3책 3책으로 구성된 필사본이고, 세로 28.7㎝, 가로 18㎝이다.

내용

‘기(畿)’란 서울로부터 사방 500리 왕의 직할지로서 기전(畿甸), 기내(畿內), 기방(畿邦)이라고도 하며, 경기도와 같은 뜻으로 쓰였다. 표지 이면에 “기전영지삼 영사례사 합칠책(畿甸營誌三 營事例四 合七冊)”이란 기록이 있는데, 이로 보아 『기전영지』와 『기전영사례』가 같은 시기에 별도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재『기전영지』라는 본 읍지 3책만이 남아 있다.

제1책 『수원부읍지』는 폭원(幅圓), 읍명, 산천, 방리(坊里), 단묘(壇廟), 능원, 전우(殿宇), 행궁, 관해(官廨), 사원(祠院), 관직, 향관(鄕官), 장관장교(將官將校), 원역노령(員役奴令), 속읍역진목(屬邑驛鎭牧), 호구, 전결, 부세, 재용, 세입, 환향진곡(還餉賑穀), 군총(軍摠), 성곽, 산성, 봉수(烽燧), 교량(橋梁), 제언(堤堰), 둔전, 누대(樓臺), 지당(池塘), 각창(各倉), 각고(各庫), 장시, 사찰, 고적(古蹟), 과시(科試), 성씨, 인물, 충신, 효자, 효부, 열녀, 부사유수(府使留守), 판관(判官) 등 45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능원」, 「전우」, 「행궁」조는 18세기 말 수원 신도시를 건설하고 화성행궁과 성곽을 축조한 정조와 관련된 기록이 많이 있으며, 「사원」과 「부세」조는 1871년(고종 8) 이후의 변동 사항을 반영하고 있다. 호구수는 정조대에 편찬된 『수원부읍지』보다 적으나 전결수는 거의 동일하다.

제2책 『춘천도호부』부사례(附事例)는 읍지와 사례로 구성되었다. 전반부 읍지 부분의 항목 구성은 강계(疆界), 건치연혁, 관원, 군명(郡名), 성씨, 산천, 풍속, 누정, 학교, 역원(驛院), 창고, 불우(佛宇), 사묘(祠廟), 고적, 명환(名宦), 인물, 제영(題詠) 등으로 이루어졌다. 이어 읍지의 내용을 보충하는 각양총록(各樣總錄)이 실려 있다. 그 내용은 건치연혁, 사계(四界), 호구, 명산, 대천, 역참, 각진(各津), 영험애구(嶺險阨口), 제약소(製藥所), 명현묘소(明賢墓所), 승지고적(勝地古跡), 사찰, 장시, 점막(店幕), 제언, 결총(結摠), 환향(還餉), 각군총(各軍摠), 경내대성(境內大姓)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춘천의 인구가 3,211호, 남자 5,983구, 여자 5,399구로 파악되었다. 읍지에 이어 사례가 수록되었는데, 읍지 부분이 14장인데 비해 사례 부분은 83장에 달해 매우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춘천본부사례」 부분을 살펴보면, 『기전영지』 즉 경기도의 각 진영을 정리한 영지에 춘천읍지 및 사례가 수록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조선 말기 군제가 강화됨에 따라 경기도와 접한 요충지이며 관동지방의 중심지인 춘천의 군사적 기능을 중요시하였다. 이에 1883년(고종 20)에 춘천부사를 ‘부사겸독련어사(府使兼督鍊御使)’로 하였고, 1887년(고종 24) 통제사의 예에 따라 독련사(督鍊使)로 승격시켰다. 1888년 1월에는 사도유수(四都留守)의 예에 의거해서 진어사(鎭禦使)로, 4월에는 ‘유수겸진어사(留守兼鎭禦使)’로 승격하고 수원과 광주의 예에 의거해서 시행하도록 하였다.

1894년 3월에는 ‘친군진어영외사(親軍鎭御營外使)’로 위상이 강화되었다. 춘천 진어영에는 양주목사, 충주목사, 영평군수, 홍천현감, 인제현감, 양구현감, 낭천현감 등이 소속되어 있었으며, 양주목사가 좌영장, 충주목사가 우영장이 되어 당시 춘천은 경기도 소속 군현들을 관할하고 있었다.

제3책 『강화부읍지』는 1783년(정조 7) 부사 김노진(金魯鎭)이 편찬한 계묘지(癸卯誌)와 1889년(고종 26)에 증보한 기축지(己丑志)를 바탕으로 편찬하였다. 내용은 권두에 김노진의 서(序)와 제(題), 이노춘(李魯春)의 발(跋), 목례(目例), 기축지범례, 계묘지범례가 있고, 이어서 권1에 강역(疆域), 고금사실(古今事實), 성씨, 풍속, 산천, 토산(土産), 성곽, 관량(關梁), 진보 부목장(鎭堡 附牧場), 돈대(墩臺), 봉수, 방리(防里), 제언, 도서(島嶼), 호구, 전부(田賦), 원세(元稅), 토공(土貢), 조적(糶糴), 포량(砲糧), 군수(軍需), 권2에 궁전(宮殿), 부해(府廨), 학교, 사단(祠壇), 누정, 능묘, 사찰, 직제(職制), 속관(屬官), 군제(軍制), 진무영(鎭撫營), 권3에 공사(貢士), 유수(留守), 경력(經歷), 판관(判官), 유애비(遺愛碑), 유우(流寓), 인물, 순난(殉難), 절효(節孝), 열녀, 권4에 문과, 음사(蔭仕), 연방(蓮榜), 처사(處士), 무과, 고적 등으로 이루어졌다. 증보된 것은 주로 19세기 서양세력 침투로 인한 병인양요, 신미양요와 관련된 내용들이다.

의의와 평가

『수원부읍지』는 1895년(고종 32)에 편찬되어 제작 시기가 가장 확실한 읍지이다. 이 책은 19세기 전반의『화성지』(1831년)와, 19세기 말의 『수원군읍지』(1899년)의 중간 단계의 읍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경기도 춘천의 읍지와 사례는 강원도의 춘천, 충청도의 충주를 경기와 서울의 방어에 포함시키는 거대한 지역 구도를 가졌음을 파악할 수 있고, 진어영의 운영 구조, 지방 재정 실태, 물가 등 지역상을 파악할 수 있다.

『강화부읍지』은 강화유수영의 지리지로서 강화의 역사를 비롯하여 신미양요와 병인양요를 겪은 지역의 변화상을 종합적으로 정리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참고문헌

『역주「강화부지」해제』(인천광역시 역사자료관 역사문화연구실, 2007)
『수원·화성군읍지』(최홍규, 국학자료원, 2001)
『규장각자료총서 지리지편 경기도읍지』1(서울대학교 규장각, 1997)
『한국지리지총서 읍지』10(한국학문헌연구소, 아세아문화사, 1985)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e-kyujangga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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