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대광익회옥편』은 1013년 송나라 진종 연간에 진팽년 등이 칙명을 받아 중수한 자전이다. 본래의 『옥편』(543년)에서 주석을 간략히 하고 글자 수를 22,700여 자로 늘린 것이 특징이다. 본래의 방대한 주석을 삭제하면서 학문적 가치는 낮아졌지만, 대중적 효용성은 증가하여 명대 이전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1412년에 간행된 기록이 존재하고 조선에서도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현재까지 한국에서 자전을 ‘옥편’이라 부르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규장각에 현재 3종의 전근대 판본이 소장되어 있다.
정의
송나라 진종 연간에 진팽년 등이 칙명을 받아 중수한 자전.
개설
서지적 사항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1412년(태종 12)에 간행된 기록이 존재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 시기 쯤에는 어느 정도의 보급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여겨진다. 규장각에는 현재 3종의 전근대 판본이 소장되어 있다. 그 중 1414년 이후로 소급되는 중국본인 청구기호 ‘고(古)3912-12-V.1-2’에는 이미『옥편광운지남』이 포함되어 있어,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원본 계열의 판본이 조선에 보급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내용
오늘날 볼 수 있는『대광익회옥편』은 1013년 송 진종의 칙명을 받아 진팽년 등이 중수 작업을 진행하여 간행한 것이다. 중수 작업의 결과 글자 수가 대폭 증가하여 22,700여 자에 이르렀다. 그 대신 원본『옥편』에 존재하였던 풍부하고 상세한 주석들이 대량으로 삭제되고 간략화되었으며, 반절(反切)에도 수정이 가해지는 등 학술적인 가치는 낮아지게 되었다. 원본『옥편』은 현재 일본에 잔권(殘卷)이 전해 내려와 당시의 면모를 어느 정도 엿볼 수 있게 하나, 그 분량은 본래 원본의 팔분의 일에 불과하다.
이렇게 풍부한 주석을 삭제하고 글자 수를 늘린 결과 그 학문적 가치는 떨어졌으나, 그 반면『대광익회옥편』의 대중적인 효용성은 증가하여 명대에 출현한『자휘(字彙)』이전까지는 가장 널리 사용되는 자서 중의 하나였다. 그러한 상황은 한반도에도 마찬가지여서『자휘』및『강희자전(康熙字典)』과 그 체재를 따른 여러 자전들이 등장하기 전까지 보편적인 자서로서 사용되었다. 그 영향은 오늘날에도 한국에서 자전을 일컬어 ‘옥편’이라 하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 『朝鮮史』第一篇 第三卷(朝鮮史編修會, 朝鮮總督府, 1938)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kyujanggak.snu.ac.kr)
- 『大廣益會玉篇』
- 『中國語言學史』(趙振鐸, 河北敎育出版社, 2000)
- 「玉篇」(周祖謨,『中國大百科全書 語言文字』, 中國大百科全書出版社,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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