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년(고종 29) 진계(進溪) 박재형(朴在馨: 1838∼1900)이 퇴계학문과 연관되고 수용이 절실한 것들의 요지를 뽑아 엮은 책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박재형이 퇴계의 학문을 칭송하여 그의 책 30여권을 읽고 퇴계의 학문과 연관되고 수용이 절실한 것들의 요지를 뽑아 편찬하였다.
필사본으로 불분권 3책이다. 책의 크기는 30.5×19.1cm이고 서명은 표제(表題)에 의하였다. 임진년(1892년)에 저자가 쓴 후학밀성박재형발(後學密城朴在馨跋)이 있다.
『도산지언(陶山至言)』권말(卷末)에 있는 박재형의 자발(自跋)에 의하면, “퇴계가 성인에 필적할 정도의 자질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높은 관직을 몇 번이나 사퇴하고 도산에 머물면서 강도구지(講道求志)하며 자신의 소신에 입각한 생애를 일관하여 드디어 한국의 대명(大明)이 되었다”고 하였다. 퇴계의 사제동행(師弟同行)·솔선수범(率先垂範)·교학실천(敎學實踐)을 높이 칭송하면서, 선생의 책 30권을 읽고 자신의 빈약함을 돌아보지 않고 퇴계학문에 관계되고 수용이 절실한 것들을 요약하여 이 책을 편찬하였다고 하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는 『도산지언』은 저자의 자필본으로 행초서로 쓰여있다. 『도산지언』은 그의 다른 저술서인 『해동속소학(海東續小學)』·『해동속고경죽마방(海東續古鏡重磨方)』·『교자요언(敎子要言)』·『진계집(進溪集)』등과 마찬가지로 중국이 아니라 우리나라 선현들의 언행을 바탕으로 저술된 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도산지언』은 퇴계사상이 19세기에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이며, 중국의 유학자가 아니라 우리나라 선현들의 언행을 바탕으로 저술하였다는 점에서 그 특징을 찾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