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학원류찬언(道學源流纂言)』은 하려(下廬)황덕길(黃德吉: 1750∼1827)이 중국 도학의 원류와 조선 도학의 원류를 기록한 책으로, 중국은 복희(伏羲) 이래 명나라의 유학자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한국은 기자(箕子) 이래 18세기 조선의 유학자에 이르기까지 주요 사상가들을 담고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도학원류찬언(道學源流纂言)』의 후서(後敍)에서는 ‘숭정기원지삼경오(崇禎紀元之三庚午)’ 곧 1750년(영조 26)에 완성되었다고 하였고, 『도학원류찬언속(道學源流纂言續)』의 후설(後說)에서는 ‘상지십년(上之十年)’ 곧 1810년(순조 10)에 마무리되었다고 하였다. 황덕길의 생몰년을 고려하면 ‘숭정기원지삼경오(崇禎紀元之三庚午)’란 표기는 적절하지 않다. 도학찬언속후설(道學源流纂言續後說)에서 『도학원류찬언』을 마무리한 뒤 다시 속편 작업을 했다고 하였으므로, 『도학원류찬언』은 1810년(순조 10) 혹은 그보다 앞선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필사본이며 원집 1책(7편), 속집 1책(5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지서명은 ‘도학원류(道學源流)’로 되어 있다.
『도학원류찬언』의 제1편에서는 복희(伏羲) 이래 신농(神農)·황제(黃帝)·창힐(蒼詰)·육상(六相)·소호(少昊)·오정(五正)·전욱(顓頊)·팔개(八愷)·제곡(帝嚳)·팔원(八元) 등을 다루었고, 제2편에서는 당요(唐堯) 이래 주대의 여러 왕 및 재상‚ 노자(老子)까지 언급하고 있다. 제3편은 공자에서 자막(子莫)에 이르기까지 주로 공자, 공자와 관련된 인물 등을 중심으로 서술하였으며, 제4편은 좌구명(左丘明)에서 왕안석(王安石)‚ 소식(蘇軾)에 이르는 송대(宋代)의 인물까지 소개하고 있다. 제5편 역시 주돈이(周敦頤)·정호(程顥)·정이(程頤)에서 이동(李侗)에 이르기까지 송대의 인물을 수록하였다. 제6편은 주희와 주희의 문인을 중심으로 기술하고 말미에 송말(宋末)의 학자 및 원대(元代)의 인물 몇 사람을 소개하였다. 제7편은 조방(趙汸)에서 왕양명(王陽明)‚ 양우복(楊迂福)에 이르기까지 명대의 인물들을 정리하였다.
『도학원류찬언속』에서는 5편에 걸쳐 한국 유학의 흐름을 정리하였다. 제1편 상(上)은 기자(箕子)에 관한 사실을 기록하고 하(下)에서는 최치원(崔致遠)·설총(薛聰)에서 최충(崔沖)·이숭인(李崇仁)에 이르기까지의 신라·고려시대 인물과 권근(權近)·정희량(鄭希良) 등 조선 초의 학자 등 모두 18명의 행적을 기술하고 있다. 제2편 상에서는 김굉필(金宏弼) 이하 이장길(李長吉)에 이르기까지 32명‚ 하에서는 서경덕(徐敬德) 이하 조수원(曺守元)까지 21명, 제3편 상에서는 이언적(李彦迪) 이하 이수광(李睟光)까지 31명‚ 하에서는 조식(曺植) 이하 정인홍(鄭仁弘)까지 27명, 제4편 상에서는 이황(李滉) 이하 34명‚ 하에서는 이이(李珥) 이하 이유태(李惟泰)까지 27명의 유학자를 언급하고 있다. 제5편 상에서는 장현광(張顯光) 이하 김성택(金聖鐸)까지 11명‚ 하에서는 허후(許厚)에서 안정복(安鼎福)까지 20명을 다루었다. 마지막의 안정복에 대해서는 인적사항만을 간단히 거론하였다.
19세기 당시에 중국 도학의 원류뿐만 아니라 조선 도학의 원류가 어떻게 인식되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특히 이황을 이자(李子)라고 하고, 정개청(鄭介淸)이나 윤휴(尹鑴) 등 당대 현실에서 기피하던 인물들도 적극적으로 소개한 점은 이 책의 큰 특징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