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변파록(誣書辯破錄)』은 18세기 전반기 경에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인계열에서 1720년(숙종 46)에 간행된 『관서문답(關西問答)』 중간본에 수록된 편지가 이황을 비난한 것으로 판단하고, 이를 논박하고 그 경위를 해명한 책이다. 그 편지 내용은 이언적(李彦迪, 1491∼1553)의 『대학장구보유(大學章句補遺)』에 대한 견해를 피력한 것인데, 그 과정에서 이황이 정존재(靜存齋)이담(李湛, 1510∼1575)에게 답장한 편지인 「답정존재서(答靜存齋書)」를 거론하면서 이황을 비난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그런 까닭에 퇴계 문인 계열이 「상노소재서(上盧蘇齋書)」를 무서(誣書)로 규정하고 반박하기 위해 이 책을 간행한 것이다.
1720년(숙종 46)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의 후손 이후담(李後聃)과 이학년(李鶴年)이 『관서문답』을 중간하면서 이준(李浚, 1540∼1623)의 「상노소재서」를 부록하였다. 영남의 도유(道孺)들이 이를 뒤늦게 보고 훼판을 시도하였으나, 이성량(李成樑) 등이 상언(上言)하여 이를 저지하였다. 도유들이 훼판에 실패하자 이와 관련된 전말을 정리하여 본서를 간행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언적의 손자인 구암(求庵) 이준이 소재(蘇齋) 노수신(盧守愼, 1515∼1590)에게 보낸 편지인 「상노소재서」가 『관서문답』 중간본에 부록된 것에 대해서 그 내용을 조목별로 논파한 내용이다.
본서의 구성은 장절의 구분이 선명하지 않으나 수록 내용은 다음과 같이 다섯 부분으로 구별할 수 있다. ① 저술 경위를 밝힌 서문이다. ② 「상노소재서」와 「답정존재서」의 내용을 그대로 전재한 부분이다. 전자는 이준이 노수신에게 보낸 편지로 이언적의 『대학장구보유』를 거론하면서 이황이 이담에게 답장한 「답정존재서」까지 언급하면서 이황을 비난한 내용이다. 그런 까닭에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답정존재서」를 함께 수록한 것이다. ③ 축조 논파한 부분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을 ‘준등서왈(浚等書曰)’로 제시하고, ‘근안(謹按)’으로 논파하였다. ④ 총론(總論)이다. ⑤ 부록(附錄)으로 전체적으로 이준의 후손들이 이전인의 미덕을 기리기 위해 사실을 왜곡한 것에 대해 논박하는 내용이 정리되어 있다.
『관서문답』의 간행에 대한 반론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18세기 영남의 지역적 쟁점의 일단을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되며, 16세기에 이언적의 『대학장구보유』에 대한 논의를 이해하는 데도 참고가 된다. 한편 이언적의 서손(庶孫)들이 지역사회에서 어떤 위상을 지니고 있었는지를 가늠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