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1821∼1846) 신부는 1784년 한국 천주교회 창설 이후 한국인으로서는 가장 먼저 사제(司祭)로 서품(敍品)된 분이므로 수선탁덕(首先鐸德)이라는 칭호를 붙였다. 수선(首先)은 ‘가장 먼저’라는 뜻이고, 탁덕(鐸德)은 ‘사탁(司鐸)’이라고도 하는데 ‘천주교회의 사제’를 뜻하는 중국식 표현이다. 김대건 신부의 아명(兒名)은 재복(再福)이고 보명(譜名)은 지식(芝植)이며, 대건(大建)은 그의 관명(冠名)이다. 1845년 8월 17일중국 상해(上海)의 김가항(金家항(巷)) 성당에서 제3대 조선교구장(朝鮮敎區長) 페레올(Ferréol, 1808∼1853, 요셉) 주교에 의해서 사제로 서품되어 약 1년간 활동하다가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軍門梟首刑)을 받고 순교하였다.
『수선탁덕김대건』은 김대건 신부에 관한 최초의 한국어 전기로, 1941년 10월경 유영근(兪榮根, 요한, 1906∼1950) 신부가 저술하였다. 이듬해 2월 일본인 구로가와〔黑川米尾〕신부를 편집 겸 발행인으로 내세워 간행하였다. 이는 일제의 탄압과 방해를 피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크기는 가로 12.5㎝, 세로 18.8㎝이다.
본문은 김대건 신부의 탄생, 소년시대, 유학시대, 정학(精學, 학문에 정진함), 귀국, 한양에서, 상해 왕래와 탁덕승품, 최후의 활동과 이변, 옥중에서, 군문효수(軍門梟首)의 언도, 빨마를 얻는 최후, 궁금한 그들, 유해(遺骸) 조사, 시복식(諡福式), 성모와 김 안드레아 신부님 등 모두 15장(章), 40절(節)로 구성되었다. 부록으로 김대건 신부의 서한목록(書翰目錄)과 약력(略歷)이 실려 있다.
『수선탁덕김대건』은 서울교구가 한국인을 주교로 하는 방인교구(邦人敎區)로 바뀐 해이면서 김대건 신학생이 마카오 신학교를 떠나 1842년 귀국을 시도하던 때로부터 꼭 100년이 지난 1942년에 간행되었다. 그러므로 당시 일제의 탄압을 극복하고 한국 천주교회의 자긍심을 높여주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