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월보(神學月報)』는 제물포에 주재한 선교사 조원시(본명은 G. H. Jones)가 최병헌 전도사의 협조를 얻어 1900년 12월에 창간한 신학 잡지이다. 1904년까지 발간한 후 정간되었다가 1907년에 속간하여 1909년 가을까지 간행되었다. 이 신학 잡지는 조원시가 선교사들과 초기 한국인 지도자들의 활동이나 교회 소식 및 교인 활동 등을 널리 알리기 위해 발간하였다.
국판 활자본. 각 권 40∼50쪽에 한글 4호 활자로 내려쓰기로 편집하였고, 띄어쓰기도 하고 있다. 다만 띄어쓰기 양식이 지금의 띄어쓰기와 다르다. 절 또는 문장 단위로 띄어 쓰고 있는데, 나름대로 독자가 읽기 편하게 한 것이다. 발간 당시로서는 이러한 양식이 최신식의 편집이었다.
『신학월보』는 선교사나 초기 한국인 지도자들이 서울, 제물포, 해주, 평양, 진남포, 영변, 신의주, 원산, 철원, 춘천, 강릉, 원주, 공주, 천안 등지로 순회하던 내용을 기재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전도 운동, 교회 설립, 부흥 운동, 성령 운동, 여선교회의 활동 뿐만 아니라 교육기관과 병원 상황, 각종 집회 소식, 하와이 이민 교포의 생활 등을 소상히 소개하였다.
『신학월보』에 실린 여러 기사 내용 중에서 특징적인 것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민족주의 학교로 유명했던 상동청년학원의 설립 과정. (2)구연영, 이승만, 박용만, 정순만, 전덕기의 넋이 깃든 논설. (3)교인들의 신앙 윤리로 “부부도, 결혼지침, 절주론”. (4)초기 감리교회의 각 의회제도와 속장, 권사. (5)전도사들이 공부해야 하는 과정.
『신학월보』는 선교사, 전도사들의 다양한 활동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감리교 제도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사 자료로 이용되며, 주일학교 교재로서 사용되기도 하였다. 특히 초기 한국 감리교회 제도 연구 및 한국교회사 연구의 필수 자료로서 가치가 크다.
또한, 제3호부터「문원」란을 두고 독자 또는 한국인 지도자와 선교사들의 문학작품을 수록하였다. 이것은 한국 초기 현대시와 현대소설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신학월보』는 1896년에 출간된『대조선독립협회회보(大朝鮮獨立協會會報)』에 이어서 두 번째로 발간된 한글 잡지이다. 한국 출판문화를 선도한 감리회 인쇄소로부터 시작된『신학월보』는 한국 잡지 발간의 가능성을 일깨워주었다.『신학월보』는 일반 사회에서『태극학보』,『대한자강회월보』,『조양보』,『소년한반도』를, 교회에서는『엡윗청년회보』,『성경강론월보』,『가뎡잡지』등을 발간하는 데 길잡이가 되었다.
또한,『신학월보』는 신학 전문 잡지이면서도 종교문학 내지 한국 현대문학에도 하나의 징검다리 구실을 해왔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