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정(程敏政, 1445~1499)이 지은 『심경부주』를 공부하는 가운데 의문이 나거나 문제가 되는 내용에 대해 중국 성리학자들의 견해와 스승인 이황으로부터 들은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주석을 단 것이다.
김부륜(金富倫, 1531~1598)은 이황의 문하에 나아가 공부하면서 『심경부주』와 『대학』에 대해 일종의 독서록인 차기(箚記)를 저술하였다. 그의 10대손 김제면(金濟冕)이 1939년 안동에서 『설월당선생문집(雪月堂先生文集)』을 간행할 때 이 두 저술을 「독서차기」란 이름으로 묶어 실으면서 『심경차기』란 이름이 붙게 되었다.
목판본. 총 56쪽 분량으로『설월당선생문집』권5에 실려 있다.
『심경부주』를 공부하는 가운데 의문이 있거나 문제가 되는 내용에 대해 송유(宋儒)의 저술이나 스승인 이황으로부터 들은 강의, 또는 사우들간에 주고받은 논의를 바탕으로 해설을 단 것이다. 저자가 서문이나 발문(跋文), 안(按)을 달지 않았기 때문에 특별히 자신의 주장을 펴기보다는 『심경부주』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 일차적인 목표가 있었다.
이황이 정민정의 『심경부주』를 특별히 중시하면서 퇴계학단에서는 이에 대한 활발한 토론과 저술이 있었다. 먼저 이황과 그의 제자인 조목(趙穆) 간에 『심경부주』의 내용과 편자인 정민정에 대한 격렬한 토론이 있었고, 그 결과 이황은 「심경후론(心經後論)」을 저술하게 되었으며, 조목의 『심경품질(心經稟質)』을 위시하여 이덕홍의 『심경질의(心經質疑)』, 조호익(曺好益)의 『심경질의고오(心經質疑考誤)』, 이함형(李咸亨)의 『심경강록(心經講錄)』, 정구(鄭逑)의 『심경발휘(心經發揮)』와 같은 저술이 뒤이었는데, 김부륜의 『심경차기』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