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간행본. 『심경표제(心經標題)』는 기호 율곡학파의 입장에서 최초로 저술된 『심경부주』의 주석서로, 퇴계학파의 관점을 많이 받아들이면서도 율곡학파의 관점도 동시에 포함시키고 있어서 『심경부주』 주석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
기호 율곡학파의 후예인 박세채는 정민정(程敏政)의 『심경부주』가 이황(李滉) 및 그의 후예들에 의해 크게 중시되자 이황의 문인인 이덕홍(李德弘)과 이함형(李咸亨)의 『심경질의(心經質疑)』와 『심경강록(心經講錄)』, 그리고 『심경표주(心經標注)』(저자 불명, 전하지 않음)를 저본으로 하고, 『주자전서(朱子全書)』, 『퇴계집(退溪集)』, 『율곡집(栗谷集)』, 『월천집(月川集)』, 『한강집(寒岡集)』, 정구의 『심경발휘(心經發揮)』, 조호익의 『심경질의고오(心經質疑考誤)』 등을 참고로 하여 정확한 주석본을 편찬하기 위하여 『심경표제』를 저술하였다.
그런데 책의 뒷부분으로 가면서 앞부분과 달리 표제어만 있거나 간략하게 서술한 것을 보면 미완성본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왕명을 받아 『심경석의(心經釋義)』를 편찬하게 된 송시열(宋時烈)을 돕게 되면서 따로 저술할 필요성을 갖지 않았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총 136쪽 필사본으로 문집 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심경표제』는 당시 크게 주목받던 『심경부주』에 대한 정확한 주석서를 편찬하려는 의도에서 저술된 책이다. 따라서 『심경부주』의 목차와 내용 순서에 따라 주요 표제어를 내세우고 여러 주석서와 문헌을 바탕으로 적절한 구절을 가려 원문 그대로 실었으며,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박세채 자신의 안(按)을 달았다. 이때 그는 이황의 제자들, 특히 정구의 견해를 많이 받아들이는 한편 이이(李珥)의 후예로서 율곡학파의 관점도 그 속에 적극적으로 포함시켰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심경부주』속 정복심(程復心)의 「심학도(心學圖)」에 관한 것이다.
일찍이 「심학도」의 내용 중 그림의 배열과 위치의 문제를 놓고 이황은 조목(趙穆) 및 이이와 논변을 한 적이 있는데, 박세채는 「심학도」의 내용을 문제 삼은 이이의 관점에 서서 『심경부주』를 주석하였던 것이다. 이후 이 입장은 율곡학파의 정견으로 받아들여진 한편 퇴계학파와 크게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심경표제』는 기호 율곡학파의 입장에 선 최초의 『심경부주』에 대한 주석서로, 비록 미완성본이긴 하지만 그 내용은 『심경석의』로 이어져 『심경부주』 주석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서 있다.
기본적으로는 퇴계 언급을 그대로 기술함으로써 적극 수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와 동시에 율곡이나 자신의 해석을 덧붙여 퇴계의 이해 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