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법』은 조익(趙翼, 1579~1655)이 이황(李滉)과 그의 문하에서 크게 존숭하였던 진덕수(眞德秀)의 『심경』과 정민정(程敏政)의 『심경부주』의 내용이 너무 번다하다고 생각하여 37장이던 것을 12장으로 축소한 후, 자신이 가려 뽑은 내용으로 재편집하여 편찬한 것으로, 『심경』 및 『심경부주』와 관련된 기호 율곡학파의 첫 저술이다.
이황과 그의 문하에서 정민정의 『심경부주』를 크게 존숭한 결과, 조익을 시작으로 기호 율곡학파에서도 이에 대해 서서히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진덕수의 『심경』과 정민정의 『심경부주』 내용이 너무 번다하다고 생각하여 원래 총 37장이던 것을 각 경전에서 한 가지씩만 가려 뽑아 12장으로 축소하여 『심법』을 편찬하였다.
이 12장 가운데에서도 9장은 『심경』에 있던 것이지만, 3장은 그가 새롭게 가려 뽑아 편입시킨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각 장의 주석은 진덕수와 정민정의 것을 모두 버리고 자신이 가려 뽑은 것으로만 붙였다. 결국 『심법』은 『심경』과 『심경부주』를 전면적으로 개편한 것이다. 그는 원래 이 『심법』을 40세 때인 1618년에 편찬하기 시작하였으나, 정묘호란(丁卯胡亂)과 병자호란(丙子胡亂) 등의 전란으로 말미암아 20년이 지난 1637년에 이르러서야 완성하였다.
목판본. 총 52쪽 분량으로『포저집(浦渚集)』권18에 실려 있다.
조익은 성현의 학문이란 곧 심학이며, 그 핵심은 경(敬)을 통해 천리를 온전히 보존하고 사사로운 욕심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이황 및 그의 후예들과 마찬가지로 진덕수의 『심경』을 중시하였지만, 『심경』과 그에 대해 주석을 덧붙인 정민정의 『심경부주』 내용이 너무 번다하고 적실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12장으로 대폭 축소하고 전면 개편하였다.
조익이 『심법』에서 성리학은 곧 심학이고 그 핵심은 경공부임을 인정한 점은 퇴계학파의 생각을 기본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의 소종래(所從來)를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심으로 보면서 이 둘을 소장(消長)의 관계로 본 것은 이이(李珥)의 이른바 ‘인심도심종시설(人心道心終始說)’을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대학(大學)』의 ‘성의(誠意)’를 특히 강조한 것은 양명학(陽明學)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심법』은 『심경』 및 『심경부주』에 대한 기호 율곡학파 최초의 저술로, 이 속에는 『심경』 및 『심경부주』에 대한 조익과 그가 속한 기호학파의 입장 및 철학적 견해가 잘 나타나 있다.
다른 주석서들이 진덕수의 원문이나 정민정의 『심경부주』에 근거해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한 것과 달리 자기 나름대로의 견해를 가지고 새로이 편집하고, 주석에 있어서도 진덕수와 정민정의 것을 일절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주를 달아 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