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자성록 ()

유교
문헌
조선후기 제21대 왕 영조가 부모에게 효를 다하지 못한 소회를 자성적인 글로 서술하여 1763년에 간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어제(御製). 자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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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제21대 왕 영조가 부모에게 효를 다하지 못한 소회를 자성적인 글로 서술하여 1763년에 간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어제(御製). 자성록.
개설

1763년(영조 39) 영조가 70세에 부모에게 효를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탄식과 슬픔의 소회를 자성적(自省的)인 글로 서술한 책으로, 특히 부모를 추모하는 정이 잘 드러나 있다.

편찬/발간 경위

영조가 제술하고 사현각(思賢閣)에서 교정하여 교서관에서 인출하였다. 이 책은 홍문관에 하사한 것이다.

서지적 사항

무신자본(戊申字本) 활자를 사용하여 1책(11장)으로 간행되었다. 광곽(匡郭)은 사주쌍변(四周雙邊)이고, 판심(版心)은 상하화문어미(上下花紋魚尾)이다. 반엽 광곽(半葉匡郭)의 크기는 23.2×15.1㎝이며, 글자는 8행 15자이다. 책 크기는 34×21.6㎝이다. 이 판본과 동일한 판본이 장서각에도 소장되어 있는데 장서각본에는 내사기가 없다.

책의 구성은 별도의 서문이나 발문이 없고 인기(印記)와 본문만 있다. 인기는 본문 앞 별면에 ‘어필자성록(御筆自醒錄) 사현각교정(思賢閣校正) 교서관개인(校書館開印)’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이 책이 사현각의 교정을 거쳐 교서관에서 인출되었음을 알 수 있다.

권말에는 ‘세계미즉조삼십구년납월(歲癸未卽祚三十九年臘月) 칠순삼가중회일전삼일지(七旬三加重回日前三日識)’라는 기록이 있다.

내용

본문의 첫머리에는 이 글을 짓게 된 동기를, 칠순(七旬) 노년이 되자 자탄과 개연(慨然)한 감회가 일었기 때문이라고 하고, 이어서 『맹자』의 ‘호연장(浩然章)’ 등의 문장을 인용하면서 사람이 천지의 바른 기운[正氣]를 받아 태어나 본체(本體)가 명경(明鏡)과 같으나 물욕에 가려져 본체가 혼탁해졌으니 이를 회복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어서 자신의 심경(心鏡)에 물욕으로 더럽혀진 때를 없애지 못함을 탄식하였다. 또 자강(自强), 자면(自勉)하려 하여도 이미 심기(心氣)가 다 쇄하였음을 탄식하였다.

그러나 이 글을 짓게 된 주된 동기는 부모에 대해 효제(孝悌)를 다하지 못한 데 대한 회한 때문이기에, 본문에는 전체적으로 이에 대한 안타까움과 탄식이 간절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 글에서 영조는 자신을 ‘자성옹(自醒翁)’이라 칭하고 있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도 불효에 대한 괴탄(愧歎)과 강개(慷慨)한 마음 때문이라고 하였다. 또한 나이가 들면서 초조한 마음이 더욱 심해지고 옛일을 생각하면서 세월만 보낸다고 심경을 토로하는 내용도 곳곳에 드러나 있다. 이 외에도 군주로써의 백성과 국가에 대하여 책무를 다하지 못한 데 대한 자책의 심정도 표현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영조가 지은 여러 어제서는 영조 당대에 금속활자, 목활자, 목판으로 인쇄되었으며, 때로는 한글음을 달고 언해한 후 간행되어 반포되기도 하였다. 또한 이 가운데 일부는 조정의 신하에게 하사되어 강학의 자료가 되기도 하였고, 왕세자인 사도세자와 왕세손인 정조에게 하사되어 이들의 정치 철학에 일정한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어제자성록』은 영조가 단순히 만년의 개인적인 소회를 기술한 것이 아니라, 신하와 후왕에게 보여 권면하게 하려는 의도가 내재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영조의 통치철학과 제왕학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영조실록(英祖實錄)』
『영조어제훈서(英祖御製訓書)』
「영조어제첩에 나타난 영조노년의 정신세계와 대응」(노혜경,『장서각』제16집,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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