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본이며 2책이다. 크기는 세로 28.8㎝이고, 가로 18㎝이다. 원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규 12184)에 소장되어 있다. 제1책의 표제는 『영지영남좌수영부사례(營誌嶺南左水營附事例)』이며, 내제는 『경상좌수영지(慶尙左水營誌)』이다. 2책의 표지명은 『영지영남좌병영부사례(營誌嶺南左兵營附事例)』, 내제는『좌병영지(左兵營誌)』이다. 1책 첫 장에 경상좌수영지의 위치를 간략하게 그린 채색 필사본 지도가 수록되었다. 영인본은 『각사등록』52(국사편찬위원회, 1991)로 발간되었다.
『영남영지』는 경상좌수영과 좌우병영의 영지·사례를 모은 지리지로, 1895년(고종 32) 7월, 군제개편으로 좌수영이 혁파되기 이전 해인 1894년(고종 31) 12월에 작성된 「경상좌수우후영소재영지사례책(慶尙左水虞侯營所在營誌事例冊)」이 수록되었다.
제1책은 「경상좌수영지(慶尙左水營誌)」, 「사례(事例)」, 그리고 「경상좌수우후영소재영지사례책」으로 구성되었다. 지금의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에 있던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영에 관한 제반 사항을 기록한 「경상좌수영지」는 영지의 형태로 건치연혁‚ 성지(城池)‚ 전선(戰船)‚ 정탐선(偵探船)‚ 사후선(伺候船)‚ 수성(守城)의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이어 수록된 「사례(事例)」는 병고(兵庫)‚ 매삭급대정식(每朔給代定式)‚ 관청‚ 공방(工房)‚ 영선(營繕)‚ 중영(中營)‚ 지창(紙倉)‚ 지통(紙筒)‚ 별조영수고(別造營需庫)‚ 선소(船所)‚ 호고(戶庫)‚ 진창(賑倉)‚ 군창(軍倉)‚ 조선식례(造船式例)‚ 수성고(守城庫)‚ 지방고(支放庫)‚ 군기(軍器)‚ 둔창(屯倉)‚ 이속포이포(移屬包伊浦) 항목 순으로 기록되었다. 제1책의 마지막 부분은 「경상좌수우후영소재영지사례책」이 수록되었는데, 다음과 같은 순서로 정리되었다. 즉, 군졸급대질(軍卒給代秩)‚ 관황질(官貺秩)‚ 병고(兵庫)‚ 호방거행질(戶房擧行秩)‚ 관청거행질(官廳擧行秩)‚ 공방거행질(工房擧行秩)‚ 군기거행질(軍器擧行秩)‚ 군창거행질(軍倉擧行秩)‚ 병주거행질(兵舟擧行秩)‚ 각항관황회부질(各項官貺會付秩)‚ 각항공용상하질(各項公用上下秩)‚ 군총질(軍摠秩)‚ 각읍소재방군질(各邑所在防軍秩)이다.
제2책은 「좌병영지(左兵營誌)」, 「영사례(營事例)」, 「우병영영지사례성책(右兵營營誌事例成冊)」, 「경상우병중영영지급사례(慶尙右兵中營營誌及事例)」, 그리고 「좌병우후형지(左兵虞侯營誌)」로 구성되었다. 「좌수영지」에 비해 「좌병영지」는 영지의 체계를 갖추었으며, 그 내용은 병영의 크기‚ 연혁을 설명하고‚ 기지(基址)‚ 성지(城池)‚ 관직‚ 공해(公廨)‚ 창고‚ 방물‚ 공복(貢鰒)‚ 군액‚ 군향(軍餉)‚ 전영장(前營將)‚ 중영장(中營將)‚ 후영장(後營將)‚ 동래진(東萊鎭)‚ 가산진(架山鎭)의 위치 및 규모에 대해 간략하게 서술되었다. 그 뒷부분「영사례」에는 주진(主鎭)에 주둔하고 있는 군인수·각처예하사(各處例下事)·상송사(上送事) 등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었다.
「우병영영사례」는 내성(內城)‚ 외성(外城) 항목이 수록되어 병영성의 규모, 장대(將臺)‚ 호지(濠池)를 살필 수 있다. 우병영의 체계 및 운영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인 병고일년봉입질(兵庫一年捧入秩)‚ 병고일년응하질(兵庫一年應下秩)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 외에 별무사청(別武士廳)‚ 수첩군관청(守堞軍官廳)‚ 도훈도청(都訓導廳)‚ 그리고 본영 군 외에 수비군의 비용을 조달하던 삼질고(三秩庫) 항목으로 구성되었다. 「경상우병중영영지급사례」는 내성과 외성의 크기, 동서남북에 설치된 장대의 이름과 호지의 위치가 간략하게 기록되었으며, 사례 역시 일년봉입질과 응하 두 항목으로 간략하다. 마지막 「좌병우후영지」는 위치, 관직‚ 그리고 공해‚ 군액‚ 영사례 항목으로 이루어졌다.
『영남영지』는 19세기 말 조선의 전통적인 영남지역의 군사체제 및 현황을 정리한 지리지이다. 19세기 말, 고종대 읍지의 특징과 동일한 사례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재정·군사 중심적인 특징을 지닌다. 특히 본 지리지는 경상도의 수군과 육군의 중심지였던 곳을 기록한 영지이므로, 군사 중심지의 연혁과 형세, 군사 규모 및 군사재정을 기록하고 있다. 이를 통해 조선 말기의 영남지역의 군사 체계와 운영 등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