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지(鰲山志)』는 수헌(壽軒) 이중경(李重慶, 1599~1678)이 1673년(현종 14)에 완성한 오산의 읍지로, 총73개 항목으로 구성되었다. 오산은 경상북도 청도(淸道)의 별칭이다.
이 책은 이중경이 서문 「오산군고금사적서(鰲山郡古今事蹟序)」에서 밝혔듯이 사라져가는 임진왜란 이전의 역사 정리의 필요성과 ‘이민치군(理民治郡)’을 위한 수령의 지방 통치 자료로 만들어졌다. 1627년(인조 5) 군수 유진(柳袗)의 계획 아래 군지 만드는 일을 시작하였으나, 군수의 파직으로 결실을 맺지 못했다. 그 후 1673년(현종 14) 청도군수 권일(權佾)의 부탁으로 기록들을 모아 편집하였으나 곧바로 간행되지 못하였다. 이후 1676년(숙종 2)에 군수 서문중(徐文重)이 등사(謄寫)하였고, 1737년(영조 13)에 서문중의 조카인 서종벽(徐宗壁)이 다시 등사하였다.
1책으로 된 석판본이며, 크기는 세로 27.7㎝, 가로 18.8㎝이다. 원본은 국립중앙도서관, 고려대학교 도서관,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영남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었고, 영인 번역본은 청도문화원에서 『국역 오산지』로 간행되었다.
『오산지』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읍지로 총 73개의 항목으로 구성되었다. 이는 조선 후기에 편찬된 읍지들이 대체로 40여 개의 항목으로 이루어진 것과 비교해 볼 때 매우 상세하고, 분화된 독특한 체계로 편찬되었음을 보여 준다. 「산천형세총론(山川形勢總論)」에서 ‘건치연혁’과 ‘관원(官員)’을 함께 설명하였는데, 단석산(斷石山)를 비롯하여 용각산, 화악산 등 산의 형세와 자천(紫川), 동창천(東倉川)에 대한 설명이 잘 묘사되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고려 승려인 일연(一然)이 기록으로 남긴 이서국(伊西國)에 대한 내용이 있다. 또한 인문지리적 내용을 풍부하게 기록하고 있어 지역의 역사적 변천 과정과 편찬 당시 지역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선현묘지(先賢墓地)」, 「선현묘전(先賢墓田)」, 「석탑」, 「제언(堤堰)」 등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없는 새로운 항목이다. 본 지리지에 수록된 형승과 지명을 비롯한 기록의 상세함은 답사를 통해 이루어졌다. 『수헌집(壽軒集)』에 수록되어 있는 「서오산지후(書鰲山志後)」에는 이중경이 벗들과 함께 운문산 일대를 직접 찾아다니면서 명승지와 유적을 감상하여 그 유람의 경로를 거리까지 포함해 자세하게 기록했다. 이후 1959년에 김재화(金在華)가 필사본으로 전해오던 책을 석판본 『정정오산지(訂正鰲山誌)』로 간행하였다. 내용은 동일하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의 경우, 1964년 청운사(靑雲社)에서 간행되었다.
『오산지』의 73개 항목은 다음과 같다. 산천형세총론(山川形勢總論), 삼국유사(三國遺事), 도선답산기(道詵踏山記), 오산삼걸(鰲山三傑), 토성(土姓), 토산(土産), 관기(官基), 성내외해우각소(城內外廨宇各所), 중창청덕루(重創淸德樓), 군지계원근(郡地界遠近), 분장도리(分掌道里), 면화창(面禾倉), 전사단(典社壇), 기우단(祈雨壇), 학궁(學宮), 삼선생봉안문(三先生奉安文), 삼선생춘추향축문(三先生春秋享祝文), 추증삼선생(追贈三先生), 사액자계서원삼현사유제문(賜額紫溪書院三賢祠諭祭文), 절효선생행적(節孝先生行蹟), 탁영선생행적(濯纓先生行蹟), 사화수말약록(史禍首末略錄), 고적(古跡), 삼족당선생행적(三足堂先生行蹟), 천목(薦目), 선암향현사(仙巖鄕賢祠), 향현사이건선암기(鄕賢祠移建仙巖記), 소요당선생행적(逍遙堂先生行蹟), 삼족당증소요당시(三足堂贈逍遙堂詩), 선현묘지(先賢墓地), 선현묘전(先賢墓田), 절효선생효문비명병서(節孝先生孝門碑銘幷序), 절효선생묘비명 발(節孝先生孝門碑銘跋), 삼족당선생묘갈명병서(三足堂先生墓碣銘幷序), 영헌공사적(英憲公事蹟), 명환(名宦), 토주내력(土主來歷), 군수선정비문(郡守善政碑文), 효자열녀정표문(孝子烈女旌表門), 문무명인(文武名人), 문무동반직(文武東班職), 제언(堤堰), 방천(防川), 경내오역(境內五驛), 경내각참원사(境內各站院舍), 경내승지(境內勝地), 경내산성(境內山城), 경내사찰(境內寺刹), 석탑(石塔), 석불(石佛), 열무당(閱武堂), 동송정(東松亭), 율림(栗林), 관죽전(官竹田), 관지소(官紙所), 투호점(投虎店), 진장(陳場), 봉수(烽燧), 전결원수(田結元數), 장적호구원수(帳籍戶口元數), 군액원수(軍額元數), 각항신역(各項身役), 진상토산(進上土産), 고이(考異), 송김직장준손기손영친청도서(送金直長駿孫驥孫榮親淸道序), 중수청도학기(重修淸道學記), 여해원중창이문(如海院重創移文), 향노당기(鄕老堂記), 대동기(大同記), 강학제생유문(講學諸生諭文), 주홀헌기(拄笏軒記), 주홀헌이건상량문(拄笏軒移建上樑文), 오산지발(鰲山志跋)로 이루어져 있다.
73개 항목으로 구성된 『오산지』는 재지사족들이 중심이 되어 편찬되었던 사찬읍지로서 조선전기 관찬지지에 비해 다양하고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임진왜란 전후 청도지역의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의 실상을 전해주는 직접적인 자료이며, 비교적 이른 시기에 편찬된 사찬 읍지라는 점에서도 사료적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