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의 학자, 도한기가 경상도 성주의 연혁·인문지리·행정 등에 관해 1880년경에 저술한 읍지.
편찬/발간 경위
서지적 사항
내용
고적(古蹟) · 공해(公廨) · 창고(倉庫) · 독용진(禿用鎭) · 군병(軍兵) · 환곡(還穀) · 방명(坊名) · 산천(山川) · 횡거촌(橫渠村) · 토산어(土産魚) · 봉수(烽燧) · 환적(宦蹟) · 물가(物價) · 호구(戶口) · 전결(田結) · 의복(衣服) · 교우(交友) · 농리(農利) 등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항목은 비슷하지만 내용은 일반적인 읍지와는 다르다. 장시(場市)에 관한 기술을 보면, 『성주목읍지(星州牧邑誌)』에는 장시의 위치만 기록되어 있지만, 이 책에는 잡다한 장세(場稅)나 관례(官隷)의 수탈이 장시의 발달을 저해하고 있다는 것과 그 시정을 주장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환적」항목도 『성주목읍지』와는 완전히 다르게 주로 양반지배체제의 타락성과 신분제 지배의 모순을 비판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특히, 이 읍지의 내용을 통해서 19세기 중엽 성주 지방의 봉건적인 농민 통제력이 급속히 악화되어 간 측면이 선명히 드러난다. 또한, 전통적인 부세제도가 성장하는 농민 경제에 질곡으로 전화되어 사회 · 경제적 모순이 크게 증폭되면서 농민층의 변혁운동이 발생하게 됨에 따라 양반지배계층-요호부농층-소빈농층 집단 간의 세력형성 과정과 대립관계를 알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은 다른 읍지가 갖지 못한 『읍지잡기』만의 독자적인 특성이다.
이러한 내용 구성에서 관청이나 양반이 아닌 중인 · 서인의 입장에서 조선 말 격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사회상을 기록한 읍지이자 일종의 논설집이라는데 자료적 가치가 크다.
참고문헌
- 『국역 성주 읍지잡기』(강희대 역, 성주문화원, 2012)
- 「조선시대 읍지의 체재와 특징」(양보경,『강남대 인문과학논집』4, 1997)
- 「16·17세기에 편찬된 경상도의 사찬읍지」(최윤진,『전북사학』17, 1994)
- 「읍지잡기의 사회경제론 연구」(이윤갑,『대구사학』36,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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