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지(臨瀛誌)』는 강릉의 역사와 인문지리 등을 엮은 읍지로, 원래는 전(前), 후(後) 그리고 속지(續誌) 등 다섯 권으로 구성되었으나 지금은 세 권만 전한다. 강원도 강릉시 소재 오죽헌, 시립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의 범례에 의하면 속지에 “정종병오수야(正宗丙午修也)”라 기록되어 있어 1786년(정조 10)에 편찬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서문(序文)에 “무신 초추(戊申初秋)”로 표기되거나, 「부선생안제명서(府先生案題名序)」에 “상지십이년 무신초추(上之十二年戊申初秋)”로 기록된 점으로 미루어 보면, 편찬시기가 1788년(정조 12)으로 추측된다. 특히 서문에 “금년 봄에 위에서 부지를 지어 올리라”는 내용으로 보아 중앙정부의 명에 의해 1788년 봄에 편찬하여 가을에 끝마쳤음을 알 수 있다.
편저자의 경우에도 알 길이 없다. 다만 서문에 ‘동호노인(東湖老人)’이라 하였고, 「부선생안제명서」에 ‘동호거사(東湖居士)’로 되어 있을 뿐이다. 「부선생안(府先生案)」을 근거로 보면, 강릉부사인 맹지대(孟至大)로 추측된다.
3책으로 구성된 필사본이고, 크기는 세로 38.4㎝, 가로 26.47㎝이다.이 책의 다른 필사본으로 『강릉부지(江陵府誌)』(국립중앙도서관)가 있고, 활자본 『증수임영지』(국립중앙도서관)가 있다. 영인본은 『임영지(臨瀛誌)』와 『완역 증수임영지』가 있다.
『증수임영지』의 범례(凡例)에 의하면 『임영지』에는 전지, 후지, 속지 세 종류가 있었다. 이를 ‘구지(舊誌)’라고 했는데, 전지는 만력(萬曆) 말년인 광해연간, 후지는 1748년(영조 24), 속지는 앞서 언급했던 시기에 편찬했다. 이로써 보면 『임영지』가 여러 종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1933년까지의 기록을 증보하여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을 편찬하였다.
『증수임영지』의 항목은 건치연혁, 속현, 건관인혁(建官因革), 군명(郡名), 공해(公廨), 현관공서(現官公署), 구방리거리급호구(舊坊里距里及戶口), 현방리급호구(現坊里及戶口), 궁전(宮殿), 교원(校院), 단묘(檀廟), 능묘, 산천, 성지(城池), 관애(關阨), 도서(島嶼), 진보(鎭堡), 진항(津港), 시장, 봉수, 목장, 역원, 강역(疆域), 역로(驛路), 교량(橋梁), 물산(物産), 진공약재(進貢藥材), 진공해착(進貢海錯), 창고, 세부(稅賦), 현세부(現稅賦), 광산, 봉록(俸祿), 제언(堤堰), 군액, 군기, 누정, 사찰, 책판(冊版), 고적, 고사(古事), 성씨, 풍속, 기사(記事), 향평(鄕評), 재예(才藝), 석증(釋證), 총화(叢話), 향렴(香奩), 지괴(志怪), 명환(名宦), 부선생안제명서(府先生案題名序), 부선생안(府先生案), 절계(折桂), 연방(蓮榜), 음사(蔭仕), 무직(武職), 인물, 효자, 효부, 열녀, 충노(忠奴), 기애(耆艾), 우거(寓居), 시화(詩話), 시문으로 구성되었다.
이 책 이외에 강릉의 읍지는 『관동지(關東誌)』의 「강릉부읍지(江陵府邑誌)」(국립중앙도서관),『강릉부지(江陵府誌)』(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강릉군지(江陵郡誌)』(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등이 있다.
강릉의 역사와 문화를 살피는 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각 항목의 경중을 따질 수는 없다. 그러나 「시문」의 경우 율곡(栗谷)을 비롯하여 퇴계(退溪), 숙종(肅宗) 등 역사적 인물의 글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다른 읍지와 비교하여 그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