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능화가 한국 그리스도교의 전래, 보급과 개항 전후의 대외관계를 서술한 천주교 관련 통사이다. 저자는 천주교나 개신교의 선교가 서구문화의 전달, 구미자본주의(歐美資本主義)의 전파와 길을 같이 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 때문에 한국과 서구간 교섭의 일단으로 그리스도교가 전래된 면을 중시하여 본서의 제목을 붙였다.
개화기에 이능화는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일본어 등 동·서양의 외국어를 골고루 섭렵하여 한때 개화 관료로서 근무하기도 했다. 그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던 부친 이원긍(李源兢)을 추모하고 조선사회의 문명개화를 지향하면서 이 책을 저술하였다.
1925년 서울의 봉익동(鳳翼洞) 무무당(無無堂)에서 탈고하였다. 1928년 상·하편 400여 쪽으로 간행하였으며, 1968년 국한문 혼용체의 단권 228쪽으로 중간(重刊)하였다.
저자 이능화는 천주교의 유입과 박해에 대하여, “조선왕조 명종, 선조 연간에 사신들이 북경에서 서학서(西學書)를 구입하면서 전래된 천주교는 계급타파와 평등을 부르짖고 사회와 풍속을 개조(改造)하고자 했기에, 당시의 유교 지배세력이 일종의 종교전쟁을 선포하여 4차례의 대규모 학살을 단행했다”고 서술했다. 또한 지배세력은 “정학(正學)을 숭상하고 이단(異端)을 배척하며, 중화(中華)를 존중하고 이적(夷狄)를 물리친다”는 것을 국시(國是)로 내세워 서교(西敎)를 배척하고 쇄국정책(鎖國政策)을 고집했기에 조선 민족이 전 세계의 낙오자가 되었고, 시대에 뒤떨어지게 되었다고 한탄하였다. 그래서 서학, 서교를 위해 피흘리며 쓰러져간 영혼(靈魂)들을 조문(弔問)하고자 한다고 기술하였다.
『조선기독교급외교사』는 조선사회 비하(卑下)와 사대부 유학자에 대한 과도한 반감을 나타내고 있는 측면이 있다. 그렇지만 조선 사회에 그리스도교가 전래된 과정을 문명개화의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기술한 천주교 통사(通史)로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