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자대전(宋子大全)』의 연보에 의하면‚ 이 책은 송시열이 77세인 1683년(숙종 9)에 엮어 숙종에게 바쳤다고 한다. 처음에는 필사본 형태로 존재하다가 뒤에 활자본으로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필사본은 국립중앙도서관 규장각 등에 소장되어 있다.시강원(侍講院)·춘방장(春坊藏)이란 도장이 찍혀 있는 규장각 소장본(규 2586)은 세자의 서연(書筵) 진강(進講)에 실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필사본과 활자본 두 종류가 존재하며, 두 간본 모두 4권 2책이다. 규장각 등에 소장되어 있다.
제1권에는 「여위원리서(與魏元履書)」·「여진시랑서(與陳侍郞書)」·「답장경부서(答張敬夫書)」 등 주희가 지인·제자들에게 보낸 편지, 제2권에는 「임오응조봉사(壬午應詔封事)」·「무신봉사(戊申封事)」 등 2편의 봉사, 제3권에는 「기유의상봉사(己酉擬上封事)」·「계미수공주차(癸未垂拱奏箚)」·「무신연화주자(戊申延和奏箚五)」 등의 봉사와 주차(奏箚), 제4권에는 「산릉의장(山陵議狀)」·「순전상형설(舜典象刑說)」·「무오당의서(戊午讜議序)」·「왕매계문집서(王梅溪文集序)」·「승상이공주의후서(丞相李公奏議後序)」 등이 실려 있다.
글마다 다루고 있는 주제는 다양하며, 실린 글 가운데 편지와 봉사의 경우에는 글의 끝부분에 편자 송시열의 의견을 작은 주로 붙이기도 했다. 이 경우, 군주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 혹은 군주의 성학(聖學), 군주의 현자 등용 문제 등을 강조하기도 하고, 부양억음(扶陽抑陰)의 이치 등을 제시하기도 했다.
또 글의 주제를 시사와 연관하여 드러내기도 했는데, 「여유승상서(與留丞相書)」에서는 이이의 당에 들겠다는 선조의 언급을 제시하고, 「답장경부(答張敬夫)」에서는 이이첨이 호문정의 논리를 오용했다고 비판했다.
이 자료는 『주자대전』에서 많은 글을 추려서 숙종에게 올린 것이다. 그러므로 송시열이 주자의 생각을 정치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활용하고자 했는지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