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자는 학보(學甫), 호는 후산이며 본관은 진성(眞城)이다.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의 문인으로, 동암(東巖) 유장원(柳長源), 천사(川沙) 김종덕(金宗德)과 함께 호문삼로(湖門三老)로 불렸다. 저서로 『퇴계시집차의(退溪詩集箚疑)』, 『근사록어류집록(近思錄語類輯錄)』 등 다수가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죽은 뒤 문인 율원(栗園) 김양림(金養林)이 일본(一本)을 정사(淨寫)하여 편차를 정하고, 이어 소암(所菴) 이병원(李秉源), 정재(定齋) 유치명(柳致明)이 수정, 보완한 것을 사손(嗣孫) 기락(基洛)이 간행하였다.
목판본. 1책 62장. 책크기는 31.3×21.0㎝이고, 반곽(半郭) 크기는 21.0×16.4㎝이다. 변란은 사주쌍변(四周雙邊)이고, 본문의 행자수는 10행 20자, 주쌍행(註雙行)이며, 판심의 어미는 내향이엽화문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간행 연도는 미상이다. 서문은 없고, 권말에 이병원, 김도화(金道和)의 발문이 있다.
이 책은 주자의 감흥시 20편 1,260자를 각각 편장(篇章)을 지어 분주(分註)한 것이다. 권두에 범례가 있어 편찬 방법을 엿볼 수 있다.
인용한 제가(諸家)는 건안채씨(建安蔡氏)를 비롯하여 15가(家)에 달한다. 역대 주해 가운데 건안채씨[蔡九峯]의 것이 비교적 주자의 본지에 근접한 것이라 하여 이를 주로 하였고, 번잡한 것은 삭제하고 고사(考事)는 더하였다.
주해 가운데 이설(異說)로서 의의가 있는 경우는 함께 실어 독자들이 판단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해설이 충분하지 않은 곳에는 보주(補註)를 달았고, 의문나는 곳이나 자신의 견해를 피력해야 할 곳에는 ‘안설(按說)’을 붙였다.
각 편이 끝날 때마다 전편(全篇)의 대지(大旨)를 설명한 것이 돋보인다. 저자가 성리학자인 까닭에 이 감흥시를 성리학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해설한 것이 특징이다.
주자의 『재거감흥시(齋居感興詩)』는 일찍부터 유자들 사이에서 많이 읽혀 왔다. 조선 세종 때에는 ‘문공주선생감흥시(文公朱先生感興詩)’라는 제목으로 경자자(庚子字)로 찍어 낸 일이 있을 정도였다. 중국과 한국의 학인들 가운데 주자의 감흥시에 주해를 낸 경우가 허다하다. 이것을 하나로 모아 집해본(集解本)을 내놓은 것은 주자의 시, 특히 「감흥시」연구에 획기적인 장(場)을 연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