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실학자 정약용이 『중용』을 풀이한 주석서. 경학서·유학서.
개설
내용
정약용이 올린 대답을 보고 정조는 “정약용이 누구냐? 그의 학문이 어떠냐? 다른 성균관 유생의 답은 대개 거친데 홀로 정약용의 대답만이 독특하다. 그는 반드시 학식이 있는 선비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후 1793년 정약용은 이것을 다시 정리하면서 자신의 대답이 견강부회하여 본지에 어긋난 것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1814년에 갑진본(1784) 구고(舊稿)를 수정하는 작업을 하면서 애초에 정조가 묻지 않은 문제 가운데도 중요한 것은 논의를 보태어 증보하여 모두 6권으로『중용강의보』를 완성하였다.
다산은『중용강의보』에서 중용(中庸)의 용(庸)을 평상(平常)이 아니라 항상(恒常)으로 해석하였다. 그리고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의 ‘천’을 인격적 상제로 해석하고, 성리학적 음양오행론과 인물성론을 비판하였으며, 성(性)이란 기호(嗜好)를 가리킨다고 주장하였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중용강의보(中庸講義補)』
-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영인본)』(여강출판사, 1985)
- 『다산실학탐구』(금장태, 소학사, 2001)
- 『정약용과 실천의 철학』(장승구, 서광사, 2001)
- 『정다산의 경학』(이을호 외, 민음사, 1989)
- 『다산경학사상연구』(이을호, 을유문화사,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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