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본(傳寫本) 1책. 크기는 세로 24.8㎝, 가로 17㎝. 4침안 선장본(線裝本).
제책 양식이 한국 전통 고서의 특징인 오침안정법(五針眼訂法)이 아니라, 일본식 사침안정법(四針眼訂法)을 사용하였음을 볼 때,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표지는 두꺼운 종이 위에 얇은 종이를 덧붙여 만들었으며, 내지(內紙)는 한말 대한제국 시대에 제도화 하여 정착·보급한 공문서 양식지이다.
악보는 서문(序文)이나 목차(目次) 등의 기록이 없고, 뒤이어 바로 첫 번째 악곡인 본령산(本靈山) 초장(初章)의 악보가 수록되어 있다. 그 아래에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의『논어(論語)』구절을 새긴 인기(印記)가 찍혀 있으며, 그 바로 아래에 ‘이윤용인(李潤溶印)’이라는 음각(陰刻)의 인장(印章)이 정사각형으로 찍혀 있다. 따라서 이 악보의 편자를 이윤용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현재 만당(晩堂)이혜구(李惠求) 박사가 소장하고 있다.
『철현금보』에는 붉은 계선(界線)이 세로로 인쇄된 용지 위에 양면으로 악곡들이 기보(記譜)되어 있다. 특히 검은색·푸른색·붉은색의 세 가지 잉크를 사용하여 한자(漢字) 육보(肉譜)로 악곡을 기록하였다. 특히 본령산(本靈山)과 중령산(中靈山)은 한자 육보에 점(点)만 찍혀 있으나, 세령산(細靈山) 이하 악곡에는 붉은 잉크로 삼조표(三條表)를 사용하여 기보하였다.
이 악보에 수록된 악곡으로는 본령산(本靈山), 중령산(中靈山), 세령산(細靈山), 지회(指回, 가락덜이), 상현(上絃), 하현(下絃), 염불(念佛), 타령(打鈴), 군악(軍樂), 권마성(勸馬聲), 세회(細回, 웃도드리)와 뒷풍류에 해당하는 양환(兩還), 계환(契還), 우환(羽還) 등이 있다. 그 다음에 철현금도(鐵絃琴圖)가 있다.
『철현금보』는 악보의 체제나 수록 내용을 자세히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을 뿐만 아니라, 대략 1900년대 편집된 것을 고려해볼 때, 근대 기보(記譜)의 발전에 대한 일면을 살펴볼 수 있게 해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