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과 이언적의 문묘종사를 비판하는 정인홍의 상소문과 정인홍을 비판하는 상소문은 3월 말부터 시작하여 5월 초까지 이어졌는데, 이에 관한 주요 내용과 광해군의 조치 등을 날짜순으로 정리한 책이다.
서문과 발문이 없어 정확한 발간연도나 경위는 알 수 없다.
1610년에 광해군은 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조광조(趙光祖)·이언적(李彦迪)·이황을 새로 문묘(文廟)에 종사(從祀)하기로 결정을 내린다. 하지만 이러한 결정이 부당하다고 생각한 정인홍은 이황과 이언적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리면서 정계와 학계에 파란을 일으킨다.
본서는 바로 1611년 3월 26일에 올린 정인홍의 상소로 시작한다. 이 상소에서 정인홍은 이황이 일찍이 조식(曺植)에 대해 노장(老莊)을 숭상한다는 등 부당하게 무함(誣陷)하였으며 출처(出處)의 도리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였다.
이 상소를 계기로 정인홍의 상소가 선현을 무함한 사특한 글이라고 비판하는 상소가 줄을 이었고, 성균관 유생들은 권당(捲堂:불만이나 불평으로 모두 성균관을 나가 관을 비우는 일)에 들어가서 성균관 유생들의 명부인 청금록(靑衿錄)에서 정인홍의 이름이 삭제되기도 하였다.
본서는 3월 말에 시작하여 5월 초까지 이어진 관련 상소들의 주요 내용과 광해군의 조치 등을 날짜순으로 정리하고 있다.
문묘종사를 둘러싸고 정인홍의 남명학파와 퇴계학파 사이의 대립 상황을 잘 보여주는 자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