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학자 이승연이 조선시대 붕당의 형성과정과 주요 논쟁들을 대화체로 서술한 문답서. 정치서·유학서.
개설
편찬/발간 경위
서지적 사항
저작연도로 기록된 갑인년(甲寅年)과 기축년(己丑年)의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갑인년은 1794년이나, 1854년으로, 기축년은 1829년이나 1889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고(古)1360/12/1-2)에 소장되어 있다
내용
이어서 서호빈은 하도락서(河圖洛書)로부터의 도학 연원과 요순(堯舜)으로부터 공자(孔子), 주자(朱子)를 거쳐 우리나라의 포은(圃隱), 정암(靜庵), 율곡, 우암(尤庵)에 이르는 도통(道統)을 설명하고,(61~62쪽) 동락자는 중국에서의 이단(異端)의 원류(源流)에 대해 설명한다.(62~66쪽). 서호빈은 송시열(宋時烈)에 대립한 윤휴(尹鑴)를 이단으로 지목하고 기해예송(己亥禮訟)의 전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66~89쪽) 여기까지가 상편이다.
하편(下篇)에서는 먼저 동락자가 제례본말(制禮本末)과 삼례(三禮)의 학(學)에 대해 일반적인 설명을 하며,(1~7쪽) 서호빈이 계해전례(癸亥典禮), 즉 인조반정 후 인조가 사묘(私廟)에 친제(親祭)하는 문제에 대한 논란에 대해 서술한다.(7~21쪽). 이어서 동락자는 중국의 역대에 추숭(追崇)한 전례(典禮)에 대해 서술하고,(21~33쪽) 서호빈은 예교(禮敎)가 행해지지 않고 도학이 밝지 못한 것은 박세당(朴世堂)의 『사변록(思辨錄)』과 최석정(崔錫鼎)의 『예기류편(禮記類編)』에 이르러 극에 달하였다고 하여 그에 대해 비판한다.(33~36쪽)
그 다음으로 동락자는 사단칠정논변(四端七情論辨)에 대해서 퇴계설(退溪說)을 중심으로 서술하고,(36~38쪽), 서호빈은 고봉설(高峯說)을 중심으로 서술한다.(38~40쪽). 동락자는 또 우계의 사칠론을 소개하고,(40~41쪽), 서호빈은 율곡의 사칠론을 소개한다.(41~44쪽) 이어서 동락자는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을 설명하고,(44~49쪽), 서호빈은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을 설명한다. 그리고 그 각자가 모두 나름의 취지가 있으며, 각각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한다.(49~53쪽).
이러한 개괄을 지나 동락자는 외암(巍巖)의 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하고,(53~55쪽), 서호빈은 남당(南塘)의 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한다.(55~58쪽). 이어서 동락자는 낙학(洛學)측의 심설(心說)에 해당하는 본연지심설(本然之心說), 명덕설(明德說), 지각설(知覺說), 미발설(未發說) 등을 간략하게 서술하고,(58~59쪽), 서호빈은 그에 대응하는 호학(湖學)측의 심설에 해당하는 내용을 서술한다.(59~60쪽). 이어서 동락자는 외암의 설을 인용하여 호론의 심설을 비판하였고,(60~61쪽) 서호빈은 남당의 설을 인용하여 낙론의 심설을 비판한다(61~62쪽)
이러한 두 사람 사이의 대화가 끝난 후 주인이 두 사람의 대화를 평하여, “두 분이 성(性)을 논하고 심(心)을 설한 것은, 그 반복하여 설명한 것이 매우 정밀하고 상세하며, 그 쪼개어 분석한 것이 미세하고 심오하여, 도(道)에 각각의 지귀(旨歸)를 가지고 있다.”라고 한다. 또한 그 논점이 매우 핵심적인 것인 만큼 둘 사이에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다고 지적하고, 다만 후학들이 편당(偏黨)을 지어 사설(師說)을 고수하면서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문의훈고(文義訓詁)에 빠져 대본지정(大本至正)한 경지는 궁구하지 않는 병폐가 있을까 염려스럽다 하여, 두 사람이 깊이 사유하고 공정하게 판단한다면 진리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 권면한다. 이에 두 사람이 공감하며 물러나는 것으로 마치고 있다.
이어서 칸을 내려 후어(後語)가 실려 있는데, 말미에는 “갑인년(甲寅年) 단양일(端陽日) 완산(完山) 이승연(李承淵) 사순(士順) 쓴다.”라고 했다.(63쪽) 후어 뒷부분에는 진덕수(眞德秀)와 유불(劉黻)의 성론(性論) 상의 대립을 『일지록(日知錄)』에서 인용하여 필사(筆寫)하여 두고, 또 『중용(中庸)』 소주(小註)에 보이는 진덕수설(眞德秀說)을 소개하였으며, 그에 대해 평하는 글을 실었다.(64~67쪽). 이는 인물성논변(人物性論辨)의 중국측의 모범적 선례를 들어서, 각기 자신하는 바의 자기 견해를 고수하되 조화와 상호존중의 자세를 잃지 말 것을 강조한 것으로, 말미에 “기축년(己丑年) 맹추(孟秋) 우재(愚齋)가 교동(校洞)에서 쓴다”라고 쓰여 있다.
의의와 평가
저자는 사대부들이 동일한 도학적 지향 위에서 단지 당파적으로 처신하지 말고 주체적으로 사유하며, 대립을 넘어 대화와 조화를 추구할 것을 촉구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참고문헌
- 『퇴계집(退溪集)』
- 『율곡전서(栗谷全書)』
- 『당의통략(黨議通略)』
- 『외암유고(巍巖遺稿)』
- 『남당집(南塘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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