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락문답 ()

유교
문헌
조선후기 학자 이승연이 조선시대 붕당의 형성과정과 주요 논쟁들을 대화체로 서술한 문답서. 정치서 · 유학서.
정의
조선후기 학자 이승연이 조선시대 붕당의 형성과정과 주요 논쟁들을 대화체로 서술한 문답서. 정치서 · 유학서.
개설

가상의 두 인물 동락자(東洛子)와 서호빈(西湖賓)이 또 하나의 가상인물인 원교주인(圓嶠主人)의 입회하에서, 조선에서 붕당이 형성된 기원으로부터 시작해서, 퇴계(退溪)와 고봉(高峯), 율곡(栗谷)과 우계(牛溪) 사이의 사칠논변(四七論辨), 예송(禮訟), 호락(湖洛) 간의 인물성동이논변(人物性同異論辨), 심설논변(心說論辨) 등의 내용을 대화체로 서술하였다. 대체로 동락자는 동인(東人)과 낙론(洛論) 쪽의 입장을, 서호빈은 서인(西人)과 호론(湖論) 쪽의 입장을 각각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편찬/발간 경위

상편(上篇) 앞머리 서(序)에 해당하는 글에서 필자는 “인종조(仁宗朝)의 전례(典禮)와 효종조(孝宗朝)의 복제(服制)는 국가의 대의론(大議論)이요,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과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은 사문(斯文)의 대시비(大是非)이다. 그런데 달권(達權)의 논(論)이 일어나자 대경(大經)이 폐(廢)하였고, 인기(認氣)의 견(見)이 나오자 심성(心性)이 혼동되었다. 후세의 학자들이 두 가지 갈래 중에서 각기 추종하는 바가 나뉘어 의심하고 방황하니 낭패이다. 내가 이를 걱정하여 경전(經傳)들을 살피고 가학(家學)의 가르침을 참고하며 널리 사우(師友)들에게 물어 나름대로 거칠게나마 조금 깨달은 바가 있었다. 이에 문답(問答)하는 형식을 빌려 제가(諸家)의 적(籍)을 함께 남겨두고 감히 단거정론(斷據定論)하지 않았다. 이는 참월된 짓을 하지 않고자 함이요, 또한 후세의 판단을 기다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서지적 사항

필사본. 상·하 2편, 건·곤 2책. 저자인 이승연과 말미에 있는 보론(補論)의 작자인 우재(愚齋)가 누구인지는 자세하지 않다. 다만, 본문의 내용에 의거할 때, 이승연은 노론(老論), 특히 낙학(洛學) 계통에 속한 인물로 추정된다.

저작연도로 기록된 갑인년(甲寅年)과 기축년(己丑年)의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갑인년은 1794년이나, 1854년으로, 기축년은 1829년이나 1889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고(古)1360/12/1-2)에 소장되어 있다

내용

본문은 “원교주인이 한거(閑居)할 때 동락자가 그를 모시고 독서를 하고 있는데, 서호빈이 의관(衣冠)을 갖추고 찾아오니 동락자가 나가 맞이하였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동락자와 서호빈 두 사람의 문답의 형식으로, 서호빈은 도학(道學)이 힘을 잃고 당론(黨論)이 득세하여 붕당을 형성해간 유래를 심의겸(沈義謙)과 김효원(金孝元) 사이의 일로부터 설명하여 동서남북노소(東西南北老少)로 분당한 연유를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자세히 서술하고,(6~40쪽) 동락자는 중국과 한국의 역대의 당론과 사화(士禍)에 대해 서술한다.(40~60쪽)

이어서 서호빈은 하도락서(河圖洛書)로부터의 도학 연원과 요순(堯舜)으로부터 공자(孔子), 주자(朱子)를 거쳐 우리나라의 포은(圃隱), 정암(靜庵), 율곡, 우암(尤庵)에 이르는 도통(道統)을 설명하고,(61~62쪽) 동락자는 중국에서의 이단(異端)의 원류(源流)에 대해 설명한다.(62~66쪽). 서호빈은 송시열(宋時烈)에 대립한 윤휴(尹鑴)를 이단으로 지목하고 기해예송(己亥禮訟)의 전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66~89쪽) 여기까지가 상편이다.

하편(下篇)에서는 먼저 동락자가 제례본말(制禮本末)과 삼례(三禮)의 학(學)에 대해 일반적인 설명을 하며,(1~7쪽) 서호빈이 계해전례(癸亥典禮), 즉 인조반정 후 인조가 사묘(私廟)에 친제(親祭)하는 문제에 대한 논란에 대해 서술한다.(7~21쪽). 이어서 동락자는 중국의 역대에 추숭(追崇)한 전례(典禮)에 대해 서술하고,(21~33쪽) 서호빈은 예교(禮敎)가 행해지지 않고 도학이 밝지 못한 것은 박세당(朴世堂)의 『사변록(思辨錄)』과 최석정(崔錫鼎)의 『예기류편(禮記類編)』에 이르러 극에 달하였다고 하여 그에 대해 비판한다.(33~36쪽)

그 다음으로 동락자는 사단칠정논변(四端七情論辨)에 대해서 퇴계설(退溪說)을 중심으로 서술하고,(36~38쪽), 서호빈은 고봉설(高峯說)을 중심으로 서술한다.(38~40쪽). 동락자는 또 우계의 사칠론을 소개하고,(40~41쪽), 서호빈은 율곡의 사칠론을 소개한다.(41~44쪽) 이어서 동락자는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을 설명하고,(44~49쪽), 서호빈은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을 설명한다. 그리고 그 각자가 모두 나름의 취지가 있으며, 각각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한다.(49~53쪽).

이러한 개괄을 지나 동락자는 외암(巍巖)의 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하고,(53~55쪽), 서호빈은 남당(南塘)의 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한다.(55~58쪽). 이어서 동락자는 낙학(洛學)측의 심설(心說)에 해당하는 본연지심설(本然之心說), 명덕설(明德說), 지각설(知覺說), 미발설(未發說) 등을 간략하게 서술하고,(58~59쪽), 서호빈은 그에 대응하는 호학(湖學)측의 심설에 해당하는 내용을 서술한다.(59~60쪽). 이어서 동락자는 외암의 설을 인용하여 호론의 심설을 비판하였고,(60~61쪽) 서호빈은 남당의 설을 인용하여 낙론의 심설을 비판한다(61~62쪽)

이러한 두 사람 사이의 대화가 끝난 후 주인이 두 사람의 대화를 평하여, “두 분이 성(性)을 논하고 심(心)을 설한 것은, 그 반복하여 설명한 것이 매우 정밀하고 상세하며, 그 쪼개어 분석한 것이 미세하고 심오하여, 도(道)에 각각의 지귀(旨歸)를 가지고 있다.”라고 한다. 또한 그 논점이 매우 핵심적인 것인 만큼 둘 사이에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다고 지적하고, 다만 후학들이 편당(偏黨)을 지어 사설(師說)을 고수하면서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문의훈고(文義訓詁)에 빠져 대본지정(大本至正)한 경지는 궁구하지 않는 병폐가 있을까 염려스럽다 하여, 두 사람이 깊이 사유하고 공정하게 판단한다면 진리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 권면한다. 이에 두 사람이 공감하며 물러나는 것으로 마치고 있다.

이어서 칸을 내려 후어(後語)가 실려 있는데, 말미에는 “갑인년(甲寅年) 단양일(端陽日) 완산(完山) 이승연(李承淵) 사순(士順) 쓴다.”라고 했다.(63쪽) 후어 뒷부분에는 진덕수(眞德秀)와 유불(劉黻)의 성론(性論) 상의 대립을 『일지록(日知錄)』에서 인용하여 필사(筆寫)하여 두고, 또 『중용(中庸)』 소주(小註)에 보이는 진덕수설(眞德秀說)을 소개하였으며, 그에 대해 평하는 글을 실었다.(64~67쪽). 이는 인물성논변(人物性論辨)의 중국측의 모범적 선례를 들어서, 각기 자신하는 바의 자기 견해를 고수하되 조화와 상호존중의 자세를 잃지 말 것을 강조한 것으로, 말미에 “기축년(己丑年) 맹추(孟秋) 우재(愚齋)가 교동(校洞)에서 쓴다”라고 쓰여 있다.

의의와 평가

저자는 비록 율곡학파(栗谷學派)의 인물인 듯 하지만 조선 중기 이후 지식인들 내부의 주요한 논쟁점들에 대해 정치적·학술적으로 정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일종의 조선시대 학술사 저작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저자는 사대부들이 동일한 도학적 지향 위에서 단지 당파적으로 처신하지 말고 주체적으로 사유하며, 대립을 넘어 대화와 조화를 추구할 것을 촉구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참고문헌

『퇴계집(退溪集)』
『율곡전서(栗谷全書)』
『당의통략(黨議通略)』
『외암유고(巍巖遺稿)』
『남당집(南塘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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