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9월에 남북 총리를 단장으로 하는 남북고위급회담이 개최된 이후 1992년 10월까지 8회에 걸쳐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개최되었다.
20세기 말에 들어 국제적으로 냉전체제가 해체되어 갔다. 한반도 차원에서 김일성정권은 후계체제 구축을 위해, 한편 노태우정권은 취약한 정당성을 보완하기 위해 적대적 대립과 긴장의 남북관계에 대한 변화가 요구되었다.
노태우정권이 출범한 이후 1988년 11월 16일 북한 총리 연형묵은 부총리급을 단장으로 하는 남북고위급 정치·군사회담을 제의하였다. 이에 남한측은 국무총리 강영훈이 12월 28일 남북관계 개선에 관한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룰 남북고위당국자회담을 제의하였다. 1989년 2월 8일 예비회담이 개최되었다.
이 회담은 팀스피리트훈련과 서경원 의원, 문익환 목사 등의 방북사건으로 교착되었다가 1990년 7월에 남북고위급회담에 대한 의제와 시기·장소 등이 합의되었다. 1990년 9월 4일에 남북총리를 단장으로 하는 제1차 남북고위급회담이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1992년 10월까지 8차에 걸친 회담이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개최되었다.
2차(1990.10.16: 평양), 3차(1990.12.11: 서울), 4차(1991.10.22: 평양)회담이 이어졌다. 1991년 12월 제5차 회담에서는 ‘남북간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되었다. 이 합의서에서 남북은 당장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공동 인식 아래 상호 인정, 군사적 불가침, 교류·협력을 통한 점진적 통일을 내외에 천명했다.
1992년 2월 제6차 회담에서 ‘비핵화 공동선언’과 ‘분과위 구성·운영 합의서’ 등에 합의하고 ‘남북기본합의서’ 문건을 정식 교환하여 발효시켰다. 그 해 5월 제7차 회담에서는 군사, 경제 교류·협력, 사회문화 교류·협력 등 3개 공동위원회를 구성하고 남북연락사무소 및 남북화해위원회를 설치·운영하는 데 합의하였다. 9월 제8차 회담에서는 남북기본합의서의 구체적 이행을 위한 화해, 불가침, 교류·협력 등 3개 분야의 부속합의서가 발효되었다.
문재인정권이 출범한 이후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했고 6월 1일 남북고위급회담을 판문점에서 개최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접촉했다. 6·15 남북공동행사,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 등에 대해 논의했다.
2018년 8월 남북고위급회담을 개최하였다. 이 회담에서 판문점선언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남북정상회담을 9월 평양에서 가지기로 합의하였다.
9월 평양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고위급회담이 2018년 10월 15일 판문점에서 진행되었다. 이 회담에서 7개 사항에 합의하였다. 특히,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하는 데 합의하여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시키는 데 실무 차원에서 진척이 있었다.
‘남한조선노동당 간첩사건’으로 1992년 12월로 예정되었던 제9차 고위급회담이 무산되고 1993년 초에 팀스피리트훈련계획 등을 핑계로 북한측은 모든 남북대화를 전면 거부하였다. 이후 남북대화에서 고위급회담 형식은 특사파견과 정상회담의 형태로 변화했다.
남북고위급회담은 정례화되지 못했지만 ‘남북기본합의서’라는 역사적 합의를 도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