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수호국민협의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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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에 결성된 최초의 재야 민주화운동 상설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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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71년에 결성된 최초의 재야 민주화운동 상설조직.
내용

재야민주화세력의 형성은 이미 1960년대 한일협정반대운동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학계, 종교계, 법조인, 문인 등 사회 각계 지도층들이 한일협정 비준에 반대하며 연합투쟁조직까지(‘조국수호국민협의회’) 결성했다. 하지만 이 기구는 상설 민주화운동조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재야민주화운동이 상설조직을 결성하며 조직적인 활동은 전개하기 시작한 것은 1971년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결성하면서부터이다.

1971년 3월 20일 이병린 등 7인은 YMCA 회의실에서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발족할 것을 결의했다. 이들은 4월 8일 종로 YMCA 8층 회의실에서 모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가 민주적이고 공명정대하게 치러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범국민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정하고, ‘민주수호 선언식’을 가졌다.

4차례의 소위원회를 통해 1971년 4월 19일 서울 대성빌딩에서 민주수호국민협의회가 결성되었다. 결성대회에서 김재준·이병린·천관우 3인이 대표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이날 참석자들은 만장일치로 민주적 기본질서가 파괴된 현실의 회복, 대통령·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정과 불법 근절 등이 포함된 결의문을 채택했다.

민주수호국민협의회는 공명선거를 달성하기 위한 참관인단 구성과 파견에 힘을 쏟았고, ‘민주수호청년협의회’, ‘민주수호청년학생연맹’, ‘민주수호기독청년협의회’ 등과 연대하여 공명선거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민주수호국민협의회는 처음에는 공동투쟁위원회 형태로 출범했지만 선거 이후 재야 운동 최초의 상설조직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1971년 10월 15일의 위수령 발동과 1972년 유신 선포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지 못했다. 하지만 1973년 12월 제도정치권과 더불어 ‘시국간담회’를 개최하여 반유신 운동의 토대를 형성했으며 1974년 9월 23일 긴급조치 위반자 석방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여 반유신 민주화운동의 시작을 알렸다. 민주수호국민협의회는 ‘민주회복국민회의’의 토대가 되었고, 이후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으로 이어졌다.

참고문헌

『한국민주화운동사 1』(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편, 돌베개, 2008)
「반유신 재야 운동」(김대영, 『유신과 반유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5)
「1971년 사회운동의 재평가」(차성환, 『1970년대 민중운동연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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