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대한인국민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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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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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독립운동단체였던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의 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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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미주 독립운동단체였던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의 후신.
내용

1907년 9월 하와이의 24개 한인단체 대표가 합동발기대회에서 조직한 한인합성협회(韓人合成協會)는 한인단체 통합운동의 산물이었다. 장인환(張仁煥), 전명운(田明雲)이 스티븐슨을 저격한 1908년 7월에 박용만(朴容萬) 주도로 열린 애국동지대표회(愛國同志代表會)를 계기로 1909년 2월 미국 본토의 공립협회(共立協會)와 하와이의 합성협회가 합동하여 국민회(國民會)를 창립했다. 이어 1910년 2월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가 국민회에 통합되어 대한인국민회가 결성되었다.

대한인국민회는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중앙총회 밑에 북미, 하와이, 멕시코, 시베리아, 만주 등의 지방총회를 두고 100여 개의 지방회를 조직하여 을사조약 폐기운동, 합병반대운동, 파리강화회의 대표파견 등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했다. 국어학교, 학생양성소 또는 소년병학교, 숭무학교, 국민군사관학교를 설립하면서 『신한민보(新韓民報)』, 『신한국보(新韓國報)』, 『국민보(國民報)』 등을 발간하여 교민들의 항일의식을 고취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교민단령」에 의해 하와이 지방총회가 하와이 대한인교민단으로 변경되면서 대한인국민회는 1922년 북미대한인국민회(北美大韓人國民會)로 개편되었다. 1940년 북미대한인국민회, 하와이대한인국민회, 동지회 합석회의는 해외한인 연합기관 설치를 결의하고, 1941년 해외한족대회를 열어 재미한족연합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참고문헌

『재미한인 50년사』(김원룡, 혜안,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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