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화(internationalization)가 국민국가 간의 교류가 양적으로 증대되는 현상을 말한다면, 세계화(globalization)는 양적 교류의 확대를 넘어서 현대 사회생활이 새롭게 재구성됨으로써 세계사회가 독자적인 차원을 획득하는 과정을 뜻한다. 세계화는 분석 단위로서의 세계사회를 중시한다.
이 세계화에 대해서는 긍정론과 부정론, 그리고 절충론이 맞서고 있다. 먼저 긍정론은 세계화가 단일한 지구적 시장과 경쟁 원칙을 강화함으로써 인류에게 발전을 가져온다고 본다. 이들은 세계화의 결과에 대해서 낙관하고 있는데, 많은 국가들이 상호교역에서 비교우위를 가지게 됨으로써 세계화는 결국 세계사회의 번영을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이에 맞서는 것이 세계화에 대한 부정론이다. 이 부정론은 다시 두 가지 견해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세계화가 낳고 있는 부정적 결과를 주목하는 시각이 하나라면 사회운동을 통해 인간적인 세계화가 가능하다는 시각이 다른 하나이다. 전자의 시각이 현재 진행 중인 세계화가 초국적 자본에 의한 세계 경제의 지배와 그에 따른 지구적 수준에서의 불평등을 강화시키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면, 후자의 시각은 환경·평화·여성·인권 등의 반(反)세계화 운동을 포함한 인간적인 세계화를 만들기 위한 대안 제시에 주력하고 있다.
긍정론과 부정론에 대비되는 제3의 시각이 절충론이다. 이 절충론은 세계화를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모두 갖고 있는 양면적인 과정으로 파악한다. 이들은 세계화를 축복 또는 재앙 가운데 어느 하나만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고, 따라서 세계화에 대한 이분법은 재고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들에게 세계화는 지구적 불평등을 강화시키는 위기인 동시에 경제·문화적 삶을 향상시킬 수 있는 새로운 기회이다. 절충론은 세계화에 대한 균형 잡힌 이해를 요청하며, 사실판단에 기반한 가치판단을 중시하고 있다.
세계화라는 개념은 1970년대 이후에 활발히 쓰이기 시작했다. ‘역사적 현상’으로서의 세계화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 롤란드 로버트슨(Roland Robertson)은 1500년대에서,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는 1800년대에서, 그리고 존 톰린슨(John Tomlinson)은 1960년대에서 세계화의 기원을 찾고 있다. 통상적으로 논의되는 세계화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본격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세계화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정치, 문화 세 수준에서 동시적으로 그리고 상호연관을 이루면서 진행되어 왔다.
먼저, 경제적 수준에서 세계화는 교역·투자·통신 등이 확대되어 국가 간 상호의존이 증대하고 지구적으로 다자간의 협의·조정·협력 등이 강화되는 현상을 뜻한다. 경제의 세계화는 오늘날 세계화를 추동하는 기본 동력이라 할 수 있다. 이 경제의 세계화 경향은 최근 더욱 두드러졌는데, 세계무역의 완전자유화를 주장하는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과 초국적기업(MNCs)의 활동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여기서 전후 세계화를 주도한 주체로서 초국적기업의 활동은 생산부문을 지구적으로 재배치하는 신국제분업을 통해 기존 국경의 의미를 축소시켜 왔다.
이러한 경제의 세계화에서 중요한 것은 기업활동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는 지역으로 자본은 자유롭게 이동하지만 노동력이 국경을 넘나드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 결과, 경제활동에 대한 국가의 규제를 철폐하려는 신자유주의 경제이론의 발언권이 커지고 규칙 및 제도의 지구적 표준화가 진행되어 온 반면, 노동조합은 교섭력을 점차 상실하게 되는 과정을 밟아 왔다.
한편, 초국적 조직 및 제도의 등장 또한 세계화의 중요한 한 측면을 이루고 있다. 기존의 국민국가 틀 내에서는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담당하기 위해 결성된 초국적 조직들은 그 규모와 중요성을 증대시켜 왔는데, 국제연합(UN),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국제통화기금(IMF) 등과 같은 정부간 조직 이외에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 그린피스(Green Peace), 국경없는의사회(Doctors Without Borders) 등과 같은 비정부조직의 비중 또한 커져 왔다. 이 초국적조직들은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서서 정치, 경제영역뿐만 아니라 교통·통신·과학 및 환경 등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초국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주력함으로써 개별 정부에 작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세계화와 연관해 국민국가의 장래 또한 활발히 논의되어 온 쟁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세 가지 견해가 제시되어 왔다. 첫 번째가 세계화가 불가피하게 국민국가를 퇴조시키고 있다는 견해라면, 두 번째는 국민국가의 역할이 지속될 것이라는 견해이며, 세 번째는 이러한 상반된 시각을 모두 비판하고 절충하는 견해이다. 한편에서 오늘날 세계화의 충격으로 인해 국민국가의 위상이 약화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 정치 및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국민국가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문화의 세계화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뉴스뿐만 아니라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 대중음악, 전신 및 통신 프로그램 역시 이제는 전 세계 국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세계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이러한 문화의 생산, 분배, 소비의 지구적 체제는 현대적인 문화 및 생활양식을 지구적으로 확산시키는 역할을 수행하는 동시에, 선진국에의 문화적 종속을 심화시키는 부정적 결과를 낳고 있다.
이러한 문화의 세계화 가운데 특기할 만한 것은 미국화(Americanization) 경향이다. 오늘날 어느 나라이건 헐리우드(Hollywood) 영화와 팝 음악, 그리고 디즈니랜드(Disney land)로 대표되는 미국식 대중문화와 생활양식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져 왔다. 지구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이러한 문화적 재구조화는 그 어떤 서구의 정책 및 기술보다도 일상적·문화적 삶과 의식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화 경향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세계화는 경제와 문화, 그리고 정치 영역에서 다각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먼저 경제 영역에서의 세계화는 1990년대부터 무한경쟁과 국가경쟁력을 부각시킴으로써 한국경제의 탈국가화를 가져 왔으며, 특히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미국식 기업운영으로 대표되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조해 왔다. 이러한 경제적 세계화는 외환위기를 단시간 내에 극복하는 데 나름대로 기여했지만, 동시에 고용, 소득, 소비에서의 사회 양극화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아 왔다.
문화 영역에서의 세계화는 미국화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 해방 이후 한국사회에서는 물질문화에서 정신문화에 이르기까지 미국식 가치와 생활양식의 영향이 증가해 왔으며, 특히 1990년대 이후 이러한 경향은 크게 강화되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미국식 생활양식에 맞서 민족주의 내지 민족문화의 중요성이 강조되기도 했지만, 미국문화로 대표되는 서구 문화는 여전히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편 한국사회에서 정치적 세계화는 국제통화기금과 같은 정부간 조직과 다양한 비정부조직의 영향력 증가에서 관찰할 수 있다. 경제적·문화적 세계화와 비교해 그 속도는 더디지만, 정치적 세계화 역시 정부를 포함한 국민국가의 의사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세계화는 최근 지구적 사회변동을 이해하려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한국사회에서도 본격화된 이 세계화에 대해서는 양면적인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에서 세계화의 적극적 수용을 강조하고 있다면, 다른 한편에서는 세계화에 대한 비판적 수용 또는 거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 걸음 물러서 볼 때, 세계화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모두 갖고 있는 양면적인 과정이다. 세계화는 지구적 불평등을 강화시키는 위기인 동시에 경제·문화적 삶을 향상시킬 수 있는 새로운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세계화가 한국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갈수록 증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세계화에 대한 더욱 포괄적이고 심도 깊은 이해가 요청되며, 세계화에 대한 더욱 적극적이고 다각적인 대응 전략 또한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