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운학(雲鶴). 경기도 화성군 송곡리 출생.
화성 재인청 도대방이었던 이재학(李在學)의 아들로 태어났고, 집안은 대대로 세습 재인집단이었다.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했으나 14살 무렵 남사당패를 따라 가출하여 일년 남짓 줄타기와 땅재주를 배웠다. 1년 후 집에 끌려와 억지장가를 들었으나 곧 도망하여 광무대에 들어갔다.
줄타기의 김관보(金官寶), 대금, 피리, 해금의 장점보(張點寶), 태평소의 방태진(方泰鎭), 남도잡가의 조진영(趙鎭英), 재담의 명인이었던 박춘재(朴春在)등에게 전통예능을 학습받았으며, 광무대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20대 중반에 활동범위를 넓혀 대동가극단에 참가하면서 임방울, 이화중선 등과 같이 중국과 만주까지 공연하였다.
광복 후에는 여성국보단체를 조직하여 운영하였고, 1948년 학원을 차려 춤을 가르쳤다. 1957년부산에서 여성농악단을 조직하여 공연했고, 상경하기 전까지 부산에서 활동했다. 1973년서울 신당동에 무용학원을 차려 가르쳤고, 국악협회 온양지부장도 지냈다. 1977년 전통무용연구회가 주최하는 이동안 한량춤 및 발탈발표회에서 서울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1979년 9월에 서울의 공간사랑 소극장에서 발탈을 공연했다.
1983년 서울시립무용단 주최 명무전에 출연했고,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발탈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발탈의 지정보다는 이동안이 추었던 기본무, 태평무, 진쇠춤, 승무, 살풀이, 엇중모리 신칼대신무를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였다고 생각했다. 1985년 팔순기념공연 후 해마다 자신의 춤 레파토리를 공연하였다. 제자로 박정임, 조영숙, 최병기, 홍경희, 정경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