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 12일, 문경시 산양면 연소 2리에 소재한 한 분묘를 이장하던 중 신장 150㎝ 정도의 미라와 함께 복식 및 관련 유물 74점이 발견되었다. 이 미라의 주인공은 평산신씨(平山申氏)이며, 장수황씨(長水黃氏)황지의 부인으로 남편의 묘소에 합장할 예정이었다. 황지는 종6품 인의(仁儀) 벼슬을 역임하였다. 정확한 생몰 년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형인 참봉(參奉) 황윤(黃贇: 1523∼1593)의 생몰년에 근거하여 16세기 말엽까지 생존하였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부인인 평산신씨는 김사득(金士得)에게 시집간 그녀의 딸이 1562년에 태어나 1625년에 사망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평산신씨 미라의 생몰년은 그보다 한 세대쯤 앞선 16세기 말엽의 인물로 추정할 수 있다. 출토된 유물은 수의단령 1점, 단령대 1점, 장옷 5점, 당저고리 2점, 장저고리 1점, 단저고리 6점, 적삼 4점, 치마 7점, 바지 5점, 소모자 1점, 버선 3점이다. 이외에도 치관제구류 등 총 74점이 출토되었다. 2007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문경 옛길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출토복식은 의생활의 시대상이 반영되는 귀중한 자료이나 장기간 땅속에 묻혀 있던 관계로 본래의 의복 색을 잃어버리고 색상이 갈변되어 출토되는 단점이 있다. 평산신씨묘 출토 유물 또한 갈변된 상태이다. 복식 유물의 구성법은 홑 · 겹 · 솜 · 솜누비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전반적으로 복식의 형태는 깃의 형태가 목판깃이고 직선배래의 소매, 길이가 길고 품이 넉넉하여 16세기 여자복식의 특징을 보인다.
수의단령(壽衣團領)은 평산신씨가 수의로 입었던 것이다. 여성이 수의로 단령을 입고 나오는 경우는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의 출토복식에서 보인다. 둥근깃, 일자형 소매, 2∼3번 접힌 좁고 긴 무의 모양, 고름이 길고 넓은 모양 등 동시대(同時代) 남성의 관복용 단령과는 형태적 차이를 보인다. 평산신씨의 수의용 단령은 공단으로 만들었고 전체적으로 쪽빛이 남아 있는 홑단령이다. 뒷길이 131cm, 앞길이 126cm로 뒤보다 앞이 짧은 형태이다. 뒤품은 90cm로 매우 넓고 뒷길에는 어깨에서 41cm 내려온 지점에 좌우에 단추 1쌍씩을 부착하여 서로 짝을 끼우면 뒷길에 주름이 생겨 품 조절이 가능하도록 되어 자연스럽게 주름이 생긴다. 흉배를 달았던 흔적은 없다.
당저고리는 2점으로 명주 길감에 여러 부분을 금선단(金線緞)으로 장식한 화려한 겹옷이다. 앞뒤 도련과 겉섶과 안섶, 내어 달린 목판깃, 진동 아래 곁막이형 무를 금선단으로 장식하였다. 뒷길이 84cm, 화장 98cm, 품 64cm이며 겨드랑이 아래로 트임이 있다. 조선 후기 당의(唐衣)의 전형으로 조선 전기 당의의 원형을 밝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장저고리 1점은 겉감은 문단, 안감을 명주를 사용하고 사이에 솜과 종이를 함께 넣은 솜장저고리이다. 뒷길이 81cm이며 겨드랑이 아래로 35cm 가량의 옆트임이 있다.
단저고리는 모두 6점이 출토되었다. 소재는 면, 명주, 화문단 장식, 직금단 장식 등이 있고 구성은 솜 · 누비 · 겹이다. 깃은 목판깃이고 소매는 일자형이며 겨드랑이 아래 두쪽무가 부착되거나 곁막이형 무가 부착되었다. 길이 49∼57cm, 품 72cm 가량으로 풍성한 형태이다. 여러 곳을 기워 입은 흔적도 많다.
적삼류 4점의 소재는 모시 · 면 · 명주로 만든 홑적삼이다. 형태는 목판깃이고 겨드랑이아래 접은 삼각무, 두쪽 무, 넘긴 삼각무가 있어서 다양한 형태이다. 습의로 제작한 명주 적삼을 제외하고 모두 바느질이 섬세하다.
치마류는 7점이다. 전체를 금선단 옷감으로 만든 치마 1점은 길이 121cm로 의례용 치마로 추정된다. 입었을 때 앞과 뒤의 길이를 달리하는 다트형 치마로서 치마 전체를 금선단으로 만든 최초의 유물이다. 나머지 6점의 치마는 모시 · 면 · 명주로 만들었으며 구성법은 홑 · 솜 · 누비이다. 이 중에는 아래 단이 한 번 더 접힌 접음단 솜치마도 있으며 모시치마는 옛쌈솔로 곱게 바느질한 다트가 잡혀 있다.
바지 5점은 밑이 막힌 것과 밑이 트인 것 모두 출토되었다. 바지 중 1점은 어깨 끈을 달았던 흔적이 있다.
이외에 염습제구와 치관제구로 현훈(玄纁) · 지요 · 습신 · 버선 · 소모자(小帽子) · 악수(幄手) · 낭(囊) · 소렴금(小殮衾) · 대렴금(大斂衾) · 초석(草蓆) · 삽(翣) · 관내의(棺內衣), 기타 직물 등이 있다.
평산신씨는 아들이 일찍 죽어 딸의 시가인 안동김씨 가문에서 현재까지 봉제사(奉祭祀)를 드리고 있다. 분묘의 이장작업도 안동김씨 집안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평산신씨의 이러한 예는 제사를 이을 적장자가 없을 경우 외손봉사로 이어지는 관행이 400여 년간을 이어온 실증적 사례가 된다. 또한 16세기 문경일대의 향촌사(鄕村史)까지도 조망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평산신씨묘 출토 복식의 소재는 금선단을 사용하는 등의 고급 소재는 전체 복식 중 서너 점에 불과하다. 소재가 소박하고 옷을 여러 번 기워 입거나 조각의 천을 이어 붙인 것이 확인된다. 그럼에도 수의로 파악되는 여성용 단령과 금선단 치마, 금선단 장식 당저고리는 평산신씨의 출토된 다른 복식류와 비교할 때 매우 화려하고 이채로운 점이다. 품계가 낮은 신분의 부인의 묘에서 이처럼 화려한 직물의 옷이 출토되기는 처음이다. 남편 황지의 벼슬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김사득에게 시집간 딸 장수황씨 묘지(墓誌)에 의하면 장수황씨 집안의 경제적 기반이 탄탄하였다고 한다. 평산신씨의 유물 가운데 금선단을 포함한 고급 소재의 직물을 사용한 배경으로 이해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