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자(虎子)의 용도에 대해서는 주기(注器)라는 견해와 변기라는 견해로 나뉘는데, 변기일 가능성이 높다. 변기를 호랑이 모양으로 만든 것은 산신이 호랑이를 불러 입을 벌리게 하고 소변을 보았다는 중국의 전설과 관련된다. 중국에서는 춘추시대 이후 나무, 청동, 토기와 자기로 만든 호자가 사용되었으며 무덤에 부장되었다. 특히 동오(東吳), 동진(東晋)을 거쳐 남북조로 이어지는 육조(六朝) 귀족 사이에서 애용되었다.
한반도에서 발견된 가장 이른 시기의 호자는 개성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는 청자 호자인데 그 형태를 볼 때 서진(西晋), 혹은 동진 초기에 만들어진 것이 수입된 것이다. 이 청자 호자를 통해서 백제 귀족들이 3세기 말, 혹은 4세기 초에 이미 이동식 변기를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부여 군수리유적에서 발견된 토제 호자는 호랑이가 입을 크게 벌린 채 고개를 약간 돌린 형태이다. 재질은 일반적인 백제 토기와 동일해서 중국제 수입품의 국산화가 이미 진행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밖에도 웅진-사비기에 속하는 것으로써 여수 고락산성과 부여 관북리유적에서 출토된 토제 호자는 호랑이의 형태가 퇴화되었다. 호자는 통일신라 이후에도 귀족과 승려 사이에서 계속 사용되었는데, 형태는 더욱 간략화 되어 호랑이의 모양은 거의 남아 있지 않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