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련로는 광석에서 철이나 구리를 뽑아내는 제련공정과 만들어진 금속을 녹여서 금속제품을 생산하는 용해작업에 사용되는 노로서 금속생산이 이루어졌음을 알려준다. 중국 한(漢)대의 제련로는 방형 혹은 원형의 모습으로 흙이나 벽돌을 이용하여 만들었지만, 우리나라는 흙으로 노벽을 만들었다. 전국에서 제련로가 조사되었는데 원삼국∼통일신라시대에는 원형 또는 방형의 모습이지만, 고려시대 이후에는 방형 또는 장방형으로 바뀌며 조선시대에는 긴 석축형으로 변화한다. 근대 이후에는 유럽식 고로가 도입되었다.
원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의 제련로는 노의 위치에 따라서 반지하식·수혈식·지상식 등으로 구분되며, 규모는 지름 90∼190㎝의 원형·방형이 보통이며 주변에 풀무를 두고 있다. 경주 황성동유적, 진천 석장리유적 등 제철유적에서 조사된 제련로는 통일신라시대까지 주로 원형이 기본이며, 고려시대 이후에는 방형·장방형으로 변화하고 조선시대에는 장방형의 석축로로 발전되는 면모를 보인다.
제련노는 금속을 녹여서 소재로 가공하는데 주로 주조철부를 만들었다. 창원 다호리유적에서 출토된 주조철부로 볼 때, 적어도 서기전부터 제련로가 사용되었으며, 노 주변에서는 주조철부, 거푸집〔鎔范〕과 안틀〔范芯〕, 도가니 등이 발견된다. 현재 국내에서 발견된 제련로는 대부분 철생산 유적에서 확인되며 경기도 화성 발안리·기안리, 충청북도 진천 석장리, 경상북도 경주시 황성동, 경상남도 밀양시 사촌리 등 전국 각지에서 확인된다. 제련로 구조와 형태 변화를 통해서 원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금속생산 기술의 발전을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