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천구읍성 ()

건축
유적
북한 함경북도 화성군에 있는 조선전기 에 축성한 성곽. 성곽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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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북한 함경북도 화성군에 있는 조선전기 에 축성한 성곽. 성곽터.
개설

함경남도 화성군 하우리의 하우평야를 마주한 낮은 산줄기를 따라 축성된 성으로, 함경북도의 중심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요지에 위치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국가지정문화재 보존급 제494호로 지정해 놓고 있다.

역사적 변천

『명천군지』에는 1517년에 축성한 성터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후 여러 차례 수축(修築)되었다.

내용

명천군은 대부분 지역이 해발 800m가 되지 않는 저산성 산지로 되어 있다. 북부는 화성군, 서부는 길주군, 남부는 화대군과 잇닿아 있으며 동부는 동해에 해당된다. 화성군의 명천구읍성은 한 면이 하우평야에 임하고 다른 세 면은 낮은 산줄기들에 둘러싸인 지대에 평산성 형식으로 쌓은 방형 평면의 석성이다. 성벽은 자연석으로 면을 맞추어 대체로 외면 축조 방법으로 쌓았는데 둘레는 약 1,180m이다. 『명천군지』에는 403개의 성가퀴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남쪽 성벽 밖으로는 해자가 있었으며 성벽 위에는 후에 기와를 씌웠다.

성문은 동쪽, 남쪽, 북쪽에 각각 하나씩 모두 3개가 있었으며 이중 남문과 동문은 미식으로, 북문은 아치로 건축하였다. 성문들은 성벽이나 성가퀴와 함께 여러 차례 수축되기도 했으며, 후에 남문은 문루에 금남루란 이름이 붙여지기도 하였다. 성안에는 관청터들이 남아 있고 1개의 못과 4개의 우물이 있는데, 우물은 주로 성문 부근에 배치되었다.

의의와 평가

이 성은 길주, 나진, 청진으로 통하는 남북행의 큰 길목에 위치한 교통 요지였으며, 당시 읍성의 축성 형식과 기술을 잘 보여주는 유산이다.

참고문헌

『조선향토대백과』15 (평화문제연구소, 2005)
『북한의 문화재와 문화유적』Ⅰ(서울대학교 출판부, 2002)
『조선대백과사전』9(백과사전출판사, 1999)
북한문화재 자료관(north.nricp.go.kr)
북한지역정보넷(www.cybern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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