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주성 ()

정치·법제
유적
북한 평안북도 동림군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평산성 형식의 석축 성곽. 성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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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북한 평안북도 동림군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평산성 형식의 석축 성곽. 성터.
개설

평안북도 동림군 동림읍에서 동남쪽 10㎞ 지점에 있는 고군영리 성안부락에 있는 산성으로 동림산성이라고도 한다. 북한에서는 국가지정문화재 보존급 제138호로 지정해 놓고 있다.

역사적 변천

통주성은 990년대에 거란의 침략을 물리치고 서북방의 방위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서희가 쌓은 성이라고 전해오기도 한다. 그러나 축조법을 볼 때 고구려 때 처음 쌓았고, 이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크게 보수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내용

성은 북쪽에 높이 솟은 검은령에서 남쪽으로 평지에 걸쳐 쌓은 평산성 형식의 돌성으로서 둘레는약 4.1㎞이다. 성벽은 4각추 형태로 일정하게 다듬은 성돌로 벽돌을 쌓듯 어긋물려 면과 선을 맞추어 쌓았다. 축성 형식은 고구려 성들인 평양성이나 용오리산성 등의 성벽과 똑 같다. 성벽은 돌로 쌓았는데 북·동·서 3면의 산지에서는 외면 축조 방법으로, 남쪽 평지에서는 양면 축조 방법으로 쌓았다. 성벽 위에는 높이가 130cm의 성가퀴를 쌓고 거기에 사구를 하나씩 내었다.

성벽의 주요 요소마다 치를 설치하였는데 현재 남아 있는 치는 24개이며 크기는 4×5m 규모부터 9×10m 규모까지 다양하다. 성문은 큰문 4개와 작은 문 2개이며 큰문은 동, 서, 남, 북 4면에 다 있고 작은 문은 동쪽과 서쪽에만 있다. 그중 아치모양의 서문과 이마돌을 놓은 동문이 지금도 남아 있다. 중요한 문들인 동문, 서문, 남문 3개의 문에는 ‘ㄷ’형의 장방형 옹성을 쌓았는데 규모가 유달리 크다. 현재 남문에는 ‘ㄴ’형의 큰 옹성이 남아 있는데 옹성 벽의 길이는 25m이다.

장대는 동, 서, 남, 북 4곳에 있다. 그 중 북장대는 가장 높은 검은령 마루에, 동장대와 서장대는 기본 성벽이 지나간 봉우리 위에 두었고 남장대는 철성을 쌓고 거기에 설치하였다. 장대들은 모두 전투 지휘에 매우 편리하고 성 안팎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성 안의 샘과 못들에서 나오는 물들은 동남쪽의 수구문으로 빠진다. 성 안에는 많은 집터들이 있는데 고구려 때 기와 조각들과 고려 및 조선시대 기와 조각들이 섞여 널려 있었다.

의의와 평가

고려시대 거란군을 물리치는 서북 지방의 길목에 위치하여 외적을 물리치는 전투에서 큰 역할을 하였다. 또한 당시 북한지역 평산성의 형식과 성 방어 체계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참고문헌

『조선향토대백과』5(평화문제연구소, 2005)
『조선대백과사전』22(백과사전출판사, 2001)
북한문화재 자료관(north.nricp.go.kr)
북한지역정보넷(www.cybern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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