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손곡동과 물천리 유적 ( )

경주 손곡동과 물천리 유적
경주 손곡동과 물천리 유적
고대사
유적
국가유산
경상북도 경주시 손곡동 · 물천리 일대에 있는 신라와 통일신라의 덧널무덤 · 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경주 손곡동과 물천리 유적(慶州 蓀谷洞과 勿川里 遺蹟)
분류
유적건조물/유물산포지유적산포지/유적분포지/유적분포지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사적(2001년 04월 28일 지정)
소재지
경북 경주시 천북면 물천리 일원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경상북도 경주시 손곡동 · 물천리 일대에 있는 신라와 통일신라의 덧널무덤 · 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개설

2001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경주 손곡동과 물천리 유적은 국내 최대 규모의 신라·통일신라 시대의 요업생산유적으로 채토장, 공방지, 건물지, 생산도구 등이 확인되어 토기와 기와생산의 전체 공정을 이해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외에도 청동기시대 취락지와 신라시대 목곽묘, 석곽묘, 석실묘, 통일신라시대의 석실묘, 고려·조선시대의 토광묘 등 복합유적이 확인되어 경주경마장 건설계획은 취소되고 유적은 보존되어 있다.

입지

경주 손곡동과 물천리 유적은 경주시 손곡동과 물천리 일원의 동대봉산(해발4654m)과 소금강산(해발268m) 사이의 좁은 분지에 형성되어 있다. 유적 동편에는 주맥인 동대봉산에서 서향한 3개의 낮은 구릉이 돌출되어 있고, 서편에는 남에서 북으로 작은 하천이 흐르고 있어 요업에 필요한 풍부한 연료와 물, 양질의 점토 그리고 적당한 경사면을 가진 구릉 등을 두루 갖춘 최적의 입지로 평가된다.

조사경위

이곳은 일찍부터 신라·통일신라시대의 가마터로 추정되어 온 곳으로, 한국마사회가 경주 경마장 건설 예정부지로 결정함에 따라 1994년부터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결과 유적의 남편 구릉(A지구)에서는 5∼6세기대 토기가마를 중심으로 한 생산유구가 확인되었고, 중간 구릉(B지구)에서는 남편 구릉의 생산기반과 관련된 매장유구가, 그리고 북편 구릉(C지구)에서는 A·B지구에 비하여 시기가 조금 늦은 단계의 생산·매장유구가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내용

청동기시대 유구는 15기의 수혈식 주거지가 조사되었다. 평면 형태는 모두 장방형이고 적색소토만 남아있는 무시설식 노지에 내부 가장자리를 따라 벽구(壁口)가 돌려져 있는 형태이다. 마제석촉, 갈판, 무문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신라시대 숯가마는 모두 24기가 조사되었으며 4세기 전후한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모두 장축방향이 등고선 방향과 일치하는 반지하식이다. 측벽에 터널형의 측구(側口)를 다수 설치하였고, 측구 전면에 수혈로 된 작업장이 연결되어 있다.

토기 가마는 모두 83기가 조사되었다. 지하식 1기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반지하식으로 구릉의 완만한 경사면에 등고선과 직교되는 방향으로 구축한 횡염식(橫焰式)이다. 토기생산과 관련된 시설물인 작업장과 건물지는 주로 구릉 정상부에서 확인되었다. 작업장은 토기성형을 위한 태토를 보관하였던 점토저장 구덩이와 녹로를 박았던 자리, 배수를 위한 도랑과 지붕을 만들기 위한 주혈 등으로 형성되어 있다. 건물지는 초석건물지·고상식건물지·수혈건물지로 구분된다. 초석건물지는 모두 3기로 모두 구릉 남쪽 평지에서 확인되었고, 고상식 및 수혈건물지는 작업장이 위치한 구릉 정상부에서 대부분 노출되는 점으로 미루어 생산 집단의 주거지 혹은 건조장, 보관창고 등 생산시설로 이해된다. 출토유물 및 고지자기 연대측정결과에 따르면 5∼6세기에 집중적으로 조업이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기와가마는 모두 2기가 조사되었다. 이중 상태가 양호한 A지구 가마는 구릉 말단부의 완만한 경사면에 등고선과 직교되는 방향으로 구축된 반지하식이다. 매장유구는 신라시대 목곽묘, 석곽묘, 석실묘와 통일신라시대 석실묘, 그리고 고려·조선시대의 토광묘 등 총 196기가 조사되었다. 이 중 신라시대 목곽묘는 왕경인(王京人) 또는 이에 준하는 특정신분에 국한된 무덤이고, 석곽묘는 그 이하 신분의 무덤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요업집단 내에 신분상의 위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유물은 총 9,228점이 출토되었다. 대다수는 토기가마 등 생산유구에서 출토된 토기류이고 청동기시대 무문토기 및 석제품 그리고 조선시대 토광묘에서 출토된 자기 및 금속유물 등이다. 경주 일원의 생활·매장유적에서 출토된 적이 없는 토기받침과 계측도구가 많이 출토된 점이 특징이며, 다양한 형태의 인물 및 동물모양 토우가 출토되어 경주 일원의 매장유적에서 출토되는 토우가 부착된 토기가 이곳에서 생산되어 공급되었음을 확인시켜 준다.

의의와 평가

경주 손곡동과 물천리 유적은 국내 최대 규모의 신라·통일신라시대 요업생산유적으로서, 채토장, 작업장, 건물지 등이 노출되어 생산 공정을 복원하고 요업기술의 발달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였다. 특히 토기가마는 서로 중복되어 있어 축조시기의 선후구분이 가능하여 각 시기별 가마의 형태, 크기, 규모 등 유형상 특징을 알 수 있게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5∼6세기대의 신라토기에 대한 정밀한 시대분류가 가능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경주 물천리 고려묘군 유적』(성림문화재연구원, 2007)
『경주 손곡동,물천리유적:경주경마장예정부지A지구』(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2004)
『경주 손곡동,물천리유적:경주경마장예정부지B지구』(동국대학교,2002)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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