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산고구려고분군은 고구려가 평양지방에 진출한 3세기 경부터 7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에 형성된 것이다. 고분군에는 돌무지무덤과 돌칸흙무덤이 있다. 돌무지무덤은 대성산 서쪽과 남쪽 산중턱에서 산기슭에 이르는 사이에 분포되어 있다.
대성산은 고구려시대의 왕궁지인 안학궁터와 궁성을 수호하던 대성산성이 있어 산 전체가 고구려의 유적지이다. 대성산 일대의 대고분군에 속하는 무덤군은 약 20여기로 이루어져 있다. 이 무덤군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제1호 고분은 봉분이 방대형으로 그 한 변의 길이가 20m가 넘는다. 대성산 부근의 무덤들은 대부분 돌칸흙무덤(石室封土무덤)이다. 돌칸흙무덤의 무덤무지는 방대형이며, 무덤칸은 거의 다 지상에 마련되었다. 무덤칸의 크기와 형태, 그 내부장식은 무덤을 쓴 연대와 묻힌 사람의 신분에 따라 다르다. 무덤칸은 다듬은 돌로 규모있게 쌓았고 판돌 또는 막돌로 쌓은 경우도 있다. 천장형식에는 평행고임, 평행삼각고임이 있고 무덤칸 안에 관대가 남아있는 것, 무덤칸에 들어가는 입구에 돌문이 있는 것도 있다.
무덤들 중에는 인물풍속도, 사신도들이 채색화로 그려져 있는 벽화무덤들이 많다. 벽화의 수준도 상당하여, 고구려인의 창조력과 세계관·예술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걸작들이다. 벽화가 있는 것은 고산동 1, 7, 9, 10호 무덤과 개마무덤(삼석구역), 내리1호무덤(삼석구역), 남경리1호무덤(삼석구역 호남리), 호남리사신무덤(삼석구역) 등이다. 그 가운데서 고산동 7, 10호 무덤은 인물풍속도 무덤이고, 고산동 1, 9호 무덤과 개마무덤은 인물풍속도 및 사신도무덤이며, 내리1호무덤, 호남리사신무덤은 사신도무덤이다.
고산동 1호무덤과 9호무덤은 동, 서, 남, 북 네 벽면을 위, 아래 두단으로 나누었다. 그 윗단에 길쭉하게 그린 사신은 땅 위에서 달음질치는 듯한 자세이며, 그 필치가 매우 굳세고 기운이 생동한 감을 준다. 원 노산동지역에 있는 개마무덤에서 평행고임1단의 개마무사그림은 앞에서 걸어가는 귀족과 그 뒤에서 갑옷 입힌 말을 끌고 가는 두 무사를 그렸다. 이 무덤을 쌓은 연대는 6세기이다.
호남리사신무덤은 지금까지 알려진 무덤 가운데서 무덤칸을 모두 흰 대리석으로 쌓아올린 유일한 무덤이며, 돌벽면에 직접 사신그림을 그렸다. 내리1호무덤 네 벽면에도 사신을 그렸다. 평행고임에는 인동넝쿨무늬가 있고 같은 단에 그린 산과 나무는 독특하여 그 배치에서나 묘사기법에 있어서 매우 우수하다. 대성산 부근의 고분벽화는 다 채색그림이며 당시 사회생활의 이모저모를 표현한 그림의 비중이 높다. 이 고분군은 고구려 사람들의 건축술과 회화술 및 당시의 사회제도, 생활풍습 등을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