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전기에, 지제고, 시상의봉어, 용주방어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처음 금성관기(錦城管記)가 되어 지방으로 나갔다가 임기를 채운 뒤 서울로 돌아와 내시(內侍)에 머물렀다. 이후 제기도감판관(祭器都監判官), 감문위녹사(監門衛錄事), 대관서령(大官署令) 직을 역임하였다. 1142년(인종 20) 지승평군사사(知昇平郡使事)로 복무할 때 청렴함과 관대함을 칭송받아 곧 중서주서(中書注書)로 승진하였다. 이후 권지감찰어사(權知監察御史), 좌정언(左正言), 지제고(知制誥) 등을 거쳐 1147년(의종 1)에는 전라주도안찰사(全羅州道按察使)가 되었다.
의종이 장원궁(長源宮)에 행차하자 좌정언으로서 지어사대사(知御史臺事) 문공유(文公裕) 등과 함께 3일 동안 궁궐에 엎드려 국가의 이해에 관련된 일을 간언하였다. 그러나 국왕의 미움을 받아 시상의봉어(試尙衣奉御)로 좌천되었다가, 용주방어사(龍州防禦使)로 외직(外職)에 나아갔다. 수 차례의 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상심한 채 병을 얻어 1149년(의종 3)에 6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그해 8월 개성 북촌(北村) 산기슭에 장례지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정지원 묘지명」(김용선,『고려묘지명집성: 제5판』, 한림대학교 출판부, 2012)
- 「김영부 묘지명」(김용선,『고려묘지명집성: 제5판』, 한림대학교 출판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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