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어

  • 언어
  • 개념
  • 삼국
삼국시대 고구려의 언어.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기문 (서울대학교, 국어학)
  • 최종수정 2024년 10월 21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삼국시대 고구려의 언어.

내용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고구려의 언어에 대하여 부여 · 옥저 · 예 등의 언어와 비슷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를 부여어군이라 부를 수 있다. 부여어군의 언어들은 모두 사멸되었지만, 그 가운데 고구려어는 약간의 자료를 남겼을 뿐 아니라, 중세국어의 형성에 참여함으로써 그 흔적이 국어 속에 남아 있다.

중세국어는 고려 초엽에 형성되었는데, 그 토대가 된 개경방언에는 고구려어의 요소가 많건 적건 남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구체적인 증거로, 중세국어의 ‘나믈(那勿=鉛)’과 ‘ᄐᆞᆫ(呑=村)’을 들 수 있다.

이들은 ≪향약구급방 鄕藥救急方≫과 ≪조선관역어 朝鮮館譯語≫에 각각 보이는데, 고구려어에서 온 것으로 믿어진다. 고구려어에 ‘乃勿(鉛)‘과 ‘呑(谷)‘이 있었던 것이다. 언어사연구에서 일부 학자들이 제기한 저층설(底層說)을 원용하면, 중세국어의 고구려어 저층을 말할 수 있다.

부여어군에 속하였던 언어들이 모두 사멸의 길을 밟은 것은 동아시아의 고대언어사에서 가장 큰 사건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 가운데서 고구려어에 관한 자료가 단편적으로나마 전하는 것은 불행중 다행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고구려어의 자료는 ≪삼국사기≫를 비롯한 사적(史籍)에 기록된 인명 · 지명 · 관명 등이다. 그들 자료를 이용하는 데 있어 특히 주의할 점이 있는데, 고유명사는 그 음상(音相)만 기록되어 있을 경우 그 의미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언어자료로 이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따라서, 음상과 의미를 갖춘 것들만이 고구려어의 확실한 자료로 이용될 수 있다. 다행히 고구려어에서는 고유명사를 표기할 때 한자의 음을 빌리기도 하고 새김을 빌리기도 하여, 때로는 하나의 고유명사에 대하여 이 두 표기를 남겨놓기도 하였다.

그런 경우 하나는 고구려어 단어의 음상을 알려주고, 다른 하나는 그 의미를 알려준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많은 예에서 그와 같은 두 가지 표기를 보여주는 ≪삼국사기≫ 지리지는 고구려어연구의 가장 중요한 자료가 된다.

특히, 권37의 고구려지명표기는 주된 자료가 되며, 권35의 본 고구려 지명표기도 보조자료로 이용될 수 있다. 권37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泉井郡一云於乙買”에서 ‘泉井’은 새김을 이용한 표기이고, ‘於乙買’는 음을 이용한 표기라고 보면, 고구려어의 ‘어을(於乙)’과 ‘매(買)’가 각각 샘[泉]과 우물[井]을 의미한 단어였다고 가정할 수 있다.

여기서 ’어을’ · ‘매’로 적은 것은 편의상 우리나라의 현대한자음을 적은 것이지, 결코 고구려어의 정확한 음상을 보인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고구려어 단어의 정확한 재구(再構)는 고구려시대의 한자음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진 뒤에라야 가능하게 될 것이다.

지명표기에서 가정된 단어가 다른 자료에서도 확인될 때, 그 존재는 더욱 큰 확실성을 띠게 된다. 고구려의 연개소문(淵蓋蘇文)이 ≪일본서기 日本書紀≫에는 ‘iri kasumi(伊梨柯須彌)’라 표기되어 있다.

연개소문의 성은 ‘泉’자로 표기되기도 하였는데, ≪일본서기≫의 표기는 그의 성이 실제로 ‘iri’로 발음되었음을 증명한 것이다. ‘iri(淵, 泉)’는 위에서 본 ‘어을(於乙=泉)’과 같은 단어임이 분명하다.

현존자료에서 얻을 수 있는 고구려어에 관한 지식은 어휘에 국한되어 있는데, 모두 합해야 100단어에 미치지 못한다. 그 가운데서 ‘어을(於乙=泉)’ · ‘매(買=井, 水, 川)’와 같이 둘 이상의 예에 나타나는 단어의 경우는 비교적 큰 확실성이 보장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수는 많지 않다.

그 대표적인 예로 ‘홀(忽=城)’ · ‘달(達=山, 高)’ · ‘노(奴) · 내(內) · 뇌(惱=土, 壤)’ · ‘탄(呑) · 단(旦) · 돈(頓=谷)’ · ‘파의(波衣) · 파혜(波兮) · 바의(巴衣=巖,峴)’ · ‘구차(口次) · 홀차(忽次=口)’ 등을 들 수 있다.

비록, 하나의 예에만 나타나더라도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어느 정도 확실성이 보장되는듯이 보인다. “三峴縣一云密波兮”에서 ‘峴’과 ‘波兮’의 대응은 확실하므로, 나머지 부분인 ‘三’과 ‘密’의 그것도 가정될 수 있다.

여기서 ‘밀(密)’이 삼(三)에 해당되는 고구려어 수사였음이 가정된다. 현존자료에서 고구려어 수사로는 ‘우차(于次=五)’ · ‘난은(難隱=七)’ · ‘덕(德=十)’ 등이 더 있는데, 이들은 모두 한 예에서만 나타난다.

“七重縣一云難隱別”의 경우를 보면 ‘七重’과 ‘難隱別’을 어떻게 대응시켜야 할지 확실하지 않다. 이 경우 ‘七’과 ‘難隱’, ‘重’과 ‘別’을 대응시키는 것은 몇 가지 가능성 중에서 하나를 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퉁구스어의 ‘nadan(=七)’, 고대일본어의 ‘nana(七)’를 고려할 때, 고구려어에 ‘난은(難隱=七)’이 있었다고 가정해볼 수 있으며, 한편 중세국어의 ‘ᄇᆞᆯ(重)’, 고대일본어의 ‘fa"(重)’를 고려할 때 고구려어에 ‘별(別=重)’을 가정해볼 수 있는 것이다.

고구려어가 부여어군에 속한다고 할 때, 부여어군은 남쪽의 한어군(韓語群)과 가까운 친족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들은 본래 한 조어(祖語)에서 갈려나온 것으로 믿어진다. 이 조어를 부여 · 한공통어(扶餘韓共通語)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국어의 최고단계라고 할 수 있다. 위에서 예로 든 고구려어의 단어들은 신라어나 백제어의 그것과 상당한 차이가 있었음이 드러나는데, 그런 차이는 조어로부터 갈려나온 뒤에 서로 다르게 변화한 결과로 설명될 수 있다.

한편, 고구려어는 퉁구스어 및 일본어와 가까운 면이 있음이 지적되기도 하였다. 부여어군은 한어군보다 알타이 제어에 더 가까운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어와 일본어 사이에 나타나는 유사성은 부여어군이 일본어의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음을 느끼게 하지만, 그 영향이 어떠한 성격의 것이었는지는 앞으로 더 깊이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 - 『국어사개설』(이기문, 민중서관, 1961·개정판 1972)

  • - 『한국고대한자음의 연구』 Ⅰ(유창균, 계명대학교출판부, 1980)

  • - 「고구려의 언어와 그 특징」(이기문, 『백산학보』 4, 백산학회, 1968)

  • - 「고구려어의 t구개음화현상에 대하여」(김완진, 『이숭녕선생송수기념논총,』 을유문화사, 1968)

  • - 「고대삼국의 지명어휘고」(박병채, 『백산학보』 5, 백산학회, 1968)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